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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화) QT_하나님의 구원 비밀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Oct 10, 2023
  • 3 min read

"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에베소서 3장 1-13절)


이방인을 향한 비밀


하나님의 경륜은 차별이 아니라 일치이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나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이때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조작된 죄목으로 체포되어(행21:27-36) 감옥에 갇혔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에게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과정을 이미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 은혜의 경륜임을 확신한다. 여기서 ‘경륜’이라고 번역된 ‘오코노미안’의 원형은 ‘오이코노미아’이다. 이것은 ‘집’을 의미하는 명사 ‘오이코스’와 ‘분배하다’, ‘관리하다’라는 뜻의 동사 ‘네모’의 파생어와의 합성어다. 주로 ‘집안을 관리하는 직책’ 또는 ‘청지기’라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긴 직책을 뜻한다. 즉,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긴 직책으로 확신하였다.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비밀이 무엇인지 밝혔다. 그 비밀은 무엇인가?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으나 이제는 그들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복음은 열려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한다. 심지어 내가 저주하는 사람까지도 말이다. 하나님의 경륜을 바로 깨달은 사람에게도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차별이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과연 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복음에 차별을 두고 있지는 않은가?


바울의 소명과 사명


은혜가 있는 곳에 사명도 있다. 바울은 하나님 은혜의 선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과 사명이라 말한다. 비록 모든 성도 중에서 작은 자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이지만 은혜를 주신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과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것이다.


무엇을 통해 이런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교회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구속의 지혜가 드러날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담대함에 해당하는 ‘파르레시안’의 원형 ‘파르레시아’가 ‘모든’이라는 뜻의 형용사 ‘파스’와 ‘말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레오’의 합성어다. 사도 바울이 세상 법정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담대하게 전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을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엡6:19, 20). 본문에서 담대함이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권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 그러나 은혜받은 모든 사람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아니다. 은혜받은 성도 중에 사명을 깨닫는 자만 감당한다. 그럼 누가 사명을 깨닫는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자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사명을 감당한다. 잊지 말라. 성도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기도의 특권을 잘 사용하는 성도만이 바울처럼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다.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했는가? 부족했다면 무엇이 부족했는가?


Photo by joshua earl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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