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목) QT_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라
- Chang Yong Park

- Oct 13, 2022
- 2 min read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갈라디아서 6장 11–18절)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 따라야 한다.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억지로 할례를 받게 했다. 그들은 유대교의 핍박을 피하려고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맞게 변질시킨, 자칭 그리스도를 따르는 거짓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기독교를 심하게 핍박했던 유대교에 대항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히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13절)
오히려 이들은 당연히 지켜야 할 율법, 즉 여호와의 말씀은 지키지 않았다. 대신 할례나 절기 준수, 음식 규정 같은 눈에 드러나는 외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할례나 절기 준수, 음식 규정 같은 것을 통해 자신들의 선민 특권을 자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12-13절에 나타난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핍박이나 고난을 피하기 위해 말씀을 합리화 하거나 눈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것, 교회의 크기, 성도의 숫자, 많은 재정 등을 자랑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14절)
그러나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높여지고 드러나는 것이 중요했다. 거짓교사들은 자신의 외적인 표식과 행위가 자랑이었지만, 바울에게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해 주신 구원의 사건이 더 중요했다. 거짓 교사들은 복음을 위하여 핍박이나 고난을 당하려하기보다는 피하기에 급급했다.
반면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높이 드러날 수 있다면 어떤 핍박과 고난을 당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은 바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은 바울에 대하여 죽었고, 바울도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즉, 세상은 바울에게 어떤 만족도 줄 수 없었고, 바울도 세상을 통해 어떤 만족도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
그렇기 때문에 할례의 유무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할례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받은 구원에 할례를 받음으로 무엇인가 더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거룩함, 그리고 하나님께 받는 인정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지으신 것, 즉 새로운 피조물(고후 11:23-27 참조)이 되는 것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행위나 공로, 율법준수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십일조헌금 유무, 단기선교 참여 유무, 봉사 횟수 등-를 내세우면 안된다. 오직 하나님의 새 생명 가운데서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수의 흔적
외적인 흔적은 자신을 드러내지만, 예수의 흔적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흔적이란 뜻을 가진 헬라어 ‘스티크마타’는 짐승이나 노예에게 찍는 낙인이다. 당시에 이 흔적은 그들을 소유한 주인들이 누구인지 표시해 주는 기능을 한다. 바울은 이 흔적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삶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이런 문제로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이 일로 바울에게는 더 큰 고난과 핍박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타난 흔적을 예수님을 따라간 흔적으로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나에게는 어떤 흔적이 있는가? 세상의 흔적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인가?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