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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금) QT_사귐의 환희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Oct 14, 2022
  • 3 min read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일서 1장 1-10절)


하나님과의 사귐


하나님과의 사귐은 이웃과의 사귐에 기쁨을 준다. 요한은 예수님에 관해 전하는 목적이 전하는 이와 듣는 이들 사이에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3절). 하지만 요한이 말하는 ‘사귐’은 복음을 전하는 자와 받는 자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과의 교제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3절 하반절).


‘사귐’이란 뜻을 가진 코이노이아는 보통 ‘친교’ 또는 ‘교제’로 번역할 수 있다, 원래의 의미는 ‘참여’ 또는 “함께 나눔”이다. 이 단어는 사업상의 동료관계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나눔이나, 성만찬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사귐’은 인간적인 교제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동시에 가리킨다. 결국 인간적인 사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 안에 속한 모든 공동체들은 항상 기쁨이 따른다.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경험한 것들을 선포한다. 그 내용은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5절) 요한은 진리와 의로움을 빛에, 불의와 악을 어두움에 비유하면서 완전하신하나님의 존재와 본성을 묘사한다.


6절에서 ‘행한다’는 말은 ‘주변을 걷는다’라는 의미이다. 현재 시제로 사용되고 있어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즉 ‘어두움 가운데 행한다’는 의미는 어두움에 물든 지속적인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요한은 어떻게 어두움이 전혀 없으시고 빛 그 자체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이 상습적인 범죄를 행할 수 있냐고 말하고 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7절)


빛 가운데 사는 삶에는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그의 백성과의 사귐을 포함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여서 지속적으로 죄 앞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한 것이다.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도 마찬가지로 현재 시제이다. 이것은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이 죄의 오염을 제거하는 것과 더 나아가 그들이 점진적인 성화, 즉 점차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성품이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죄를 인정하는 회개


죄를 부정하면 단절, 죄를 자백하면 사귈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여기서 ‘우리’는 믿는 자들을 의미하는데, 곧 믿는 자들이 죄 없다고 주장한다면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10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9절)


믿는 자들은 ‘죄를 자백하는’ 순종을 통해 빛 가운데 살게 된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단절하지만, 모든 죄를 시인하고 자백하면 하나님과의 사귐을 단절시키는 죄가 중단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죄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죄의 부정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죄에 대한 부정이다.


당신은 빛 가운데 거한다고 하면서 지속적으로 어두움 가운데 짓고 있는 죄가 무엇인가?


Photo by Tribesh Kayasth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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