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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목) QT_완전한 사랑으로 가는 길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Oct 20, 2022
  • 2 min read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한일서 3장 13-24절)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의 씨를 가진 성도는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자기 욕심과 자기애, 이기주의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럼에도 사도 요한은 우리 모두에게 “서로 사랑하라”(11절)고 권면하고 가르친다.


‘서로 사랑하라’로 번역된 헬라어 ‘아가포멘’은 ‘아가파오’의 현재 능동태 가정법으로, 계속적이며 습관적으로 사랑할 것을 권면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곧 가인의 악한 행동과는 반대된다. 아벨의 의로운 행동처럼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에 따라 사랑과 선행, 진리를 행한다고 하여도 세상은 이를 미워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세상이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자를 미워해도 놀라지 말고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한다(13절). 여기서 ‘이상히 여기다’는 뜻으로 번역된 ‘다우마제테’의 원형 ‘다우마조’는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반응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상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끝이 없으신 사랑을 자기 삶의 그릇에 담아내어 ‘행함’과 ‘진실함’으로 살아낼 뿐이다(18절). 여기서 ‘진실함’으로 번역된 ‘알레테이아’는 진리에 부합하는 진실한 마음을 뜻한다.


이런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굳센 마음으로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19절). 또한 진리에 속한 성도는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며 살아간다.


먼저 믿고 사랑함


사랑의 열매를 위해서는 먼저 믿음의 씨가 필요하다. 23절에서 ‘믿고’로 번역된 ‘피스튜소멘’을 과거 시제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사랑할 것이니라’로 번역된 ‘아가포멘’을 현재 시제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믿음과 사랑의 시간적 순서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성도는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 먼저 선행된 후 그 믿음에 기초하여 헌신된 사랑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사랑의 행함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세상의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형제를 사랑할 수는 없다. 주님께서 목숨까지도 버리셨던 완전한 사랑은 오직 예수님을 믿을 때에만 가능하다(16절).


가인의 길은 자신을 위하는 길 같지만 오히려 멸망으로 이끄는 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는 길은 손해를 보고 희생해야 하는 길이지만 이 길이야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다. 완전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영광스러운 길이다.


완전한 사랑의 계명을 지킴으로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한다. 또한 성령의 임재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24절).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삶 가운데서 ‘행함’과 ‘진실함’으로 살아내기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간구할 것인가?


Image by Miroslav Kaclí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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