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월) QT_영광을 위한 순종의 삶
- Chang Yong Park

- Oct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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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야고보서 2장 1-13절)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가치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광에 있어야만 한다. 야고보는 2장을 시작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영광이라는 개념과 연결한다. 개역 개정에서 ‘영광의 주’라고 번역된 부분은 많은 해석적 논의를 불러왔다. 어떠한 학자들은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수식하는 것으로 본다. 또 다른 학자들은 그것을 믿음에 수식되는 것으로 본다. 우리는 이 논의를 통하여 야고보가 지금 ‘영광’이라는 개념에 굉장한 무게를 실으며 2장을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진정한 성도의 삶은 영광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본 문단에서 등장하는 두 주제는 모두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개념과 배치된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가치를 둔 삶이 아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영광으로 볼 수 없다. 내가 오늘 고민하는 많은 문제는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가치 아래에서 조명해 보면 간단하게 된다.
내가 오늘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들은 무엇인가? 나의 삶을 그리스도에 대한 영광의 믿음을 드러내고 있는가?
빈부에 따른 차별
교회 안의 차별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차양막과 같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구체적인 예를 든다. 우리는 모두 빈부의 격차에 의해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야고보는 그 장소가 ‘회당 안’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 안에서’ 서로 차별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서도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공동체는 영광의 믿음을 소유한 곳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차별은 새로운 생명의 원리와 완전히 배치되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해 주셨기 때문이다(5절).
나는 교회 안에서 다른 지체들을 차별한 적이 없는가?
최고의 법, 이웃 사랑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삶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야고보는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레위기의 법을 인용하며, 그것을 최고의 법이라고 부른다. 이 최고의 법(노모스 바실리코스)을 직역하면 ‘왕의 율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어떠한 학자들은 야고보가 그리스도의 강령을 떠올리며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지적한다.
야고보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더 제시한다. 만약 우리가 긍휼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심판의 자리에서도 긍휼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13절).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하나의 지표를 생각하면, 우리의 삶의 모든 방향성이 자리 잡게 된다.
나는 타인에게 긍휼을 베풀며 살아가고 있는가?
Photo by marc linton labian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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