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금) QT_하나님의 은혜로 제자리에 돌아오다
- Chang Yong Park

- Oct 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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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 2장 1-10절)
벗어난 과녁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이 문제다.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다(1:15-23).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성령으로 성도들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신 의미를 알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받을 기업의 풍성함과 그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하심을 위한 기도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디서 구원을 받았는지, 어디에까지 높임을 받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도다”(엡1:1). 우리는 모두 허물과 죄로 죽는다. 허물과 죄는 악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선택된 단어이다. 허물(파라프토마)은 잘못됐음을 알지만, 경계선을 넘어가거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죄(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놓치는 것으로 표준에 미치지 못한 상태이다. 두 단어는 인간의 악행의 모든 측면을 포함한다. 우리는 잘못된 곳에 서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반역자이면서 실패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에게서 벗어난 결과 우리는 죽는다(1절).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거하여 지속해서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죽음은 무엇인가? 영적 죽음은 죄가 가져오는 하나님과의 분리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2)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할 곳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 결과는 사망과 분리뿐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자리
사랑이 있는 곳에 어둠이 없다. 우리 자리는 사랑의 하나님 옆자리이다. 본문은 하늘에 오르신 주님에 관해서만 쓰고 있지 않다. 우리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 자리에 앉히신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자리에 있던 악한 자이기 때문이다.
자리의 변화는 우리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다른 자리에 거했었다. 그래서 허물과 죄를 따르는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허물과 죄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선한 일을 따르게 하셨다(10절).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의한 새로운 창조에 있다. 하나님은 허물과 죄를 따르며 그 가운데 죽었던 우리의 자리를 변화시키신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따르는 새로운 존재로 새롭게 창조하신다.
이제 우리는 그의 선한 일을 행하는 자리에 서 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0절)
이 문장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단어는 ‘그의(아우투)’다. 이 단어는 자신과 별개인 ‘이것’과 ‘저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포이에마)이 되며,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크티스덴테스) 그의 피조물이다.
나는 지금 내 자리에 돌아와 있는가? 지금 있는 자리는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가?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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