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금) QT_우리는 언약의 자녀입니다
- Chang Yong Park

- Oct 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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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갈라디아서 4장 21-31절)
두 가지 언약
우리가 사는 땅에는 두 언약이 존재한다. 오늘 본문은 비유를 통해 두 언약이 우리가 사는 땅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24절을 보면 “이것은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두 여자는 두 가지 언약을 가리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 언약에 해당하는 이는 바로 여종 하갈이다. 바울은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 태어났다고 말한다(23절). ‘육신을 따라’(헬, 카타 사르카)는 영어의 표현으로는 ‘according to flesh’(NLT) 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없이 육체를 통한 자연적인 탄생’을 의미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는다. 하갈은 바로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율법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 부분을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을 뜻한다고 말한다. 시내산은 율법이 주어진 곳이다. 바울은 연이어서 이 시내산을 예루살렘과 연관시킨다. 그리고 현재 예루살렘에 살면서 율법 아래 머물고자 원하는 자들은 결국 하갈의 자녀들처럼 율법의 종노릇 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두 번째 언약에 해당하는 이는 바로 자유 있는 여자 즉 ‘사라‘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본처인 사라를 자유 있는 여자라고 부른다. 이 부분을 23절은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약속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너무 늙었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진 상태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와 의지로 약속의 씨를 주셨다(창21:2). 이것은 인간의 뜻과 고집 그리고 노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 그리고 방식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언약의 축복은 육체를 통해 얻은 자녀 즉 율법의 행위로는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 아래 머무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언약 아래서 태어난 자유자들은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닌 ‘하늘의 예루살렘(히11:16)’과 ‘새 예루살렘(계21:2)’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자들은 자유자 즉 하늘의 시민권자들(빌 3:20)이 된다.
육체를 따라 난 자들과 성령을 따라 난 자들의 차이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은 성령을 따라 난 자들을 박해한다. 창세기 21장 9절에는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고 있다”고 기록한다. ‘놀리다’(히, 차하크)는 ‘비웃다’ 또는 ‘조롱하다’의 의미다. 이 부분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여기서 말하는 ‘육체를 따라 난 자’는 바울이 대적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가리키며, ‘성령을 따라 난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의미한다. 이처럼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박해를 가한다. 율법은 정죄만 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도록 유혹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28절). 그렇다면 약속의 자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30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여종과 그 아들을 쫓아내라는 것은 율법주의(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시도)를 버리라는 말이다. 그렇게 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강조점이다.
나는 어떤 언약을 추구하고 있는가? 나의 정체성이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 나에게 어떤 위로와 도전이 되는가?
Photo by Austin Kehmei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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