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금) QT_주의 뜻을 따름이 지혜다
- Chang Yong Park

- Nov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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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5장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야고보서 4장 13절 – 5장 6절)
주의 뜻을 따름
의미 있는 피조물의 삶은 창조자 안에서 펼쳐진다. 주의 뜻 안에서만, 삶은 의미 있다. 내 뜻대로 살면 교만과 죄만 남기 때문이다. 본문은 장사하는 자들에 대한 권면(4:13-17절)과 부한 자들에 대한 경고(5:1-6절)로 구성된다. 한 어리석은 장사꾼은 어떤 도시에 가서 열심히 장사하면 이익을 볼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할 일과 일할 곳과 기간을 계획하고 행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시간과 계획이 내 뜻대로 되리라는 교만이 문제이다. 그 계획안에 하나님이 계산되지 않으면 교만이다. 인간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처럼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제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계획과 확신은 낭패를 당하기 쉽다.
주의 뜻대로 사는 삶은 선을 행하는 삶이다(17절). 악이 무엇인지를 알면 선을 알 수 있다. 허탄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다(16절). 여기 ‘허탄’은 헬라어로 ‘알라조네이아’다. 오만, 거만, 자랑을 의미한다. 시간이나 생명이나 미래까지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허탄한 자랑이다.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는 교만이다. 이 모든 것들은 주의 뜻 안에서만 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유한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 뜻과 계획이 성취되는 것보다 가장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며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 참된 지혜다. 그것이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안개와 같은 유한한 삶을 영원하고 의미 있는 생명의 삶으로 바꾸는 길이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나의 교만은 무엇인가? 어떻게 잘못된 시각을 바꿀 수 있을까?
의를 따르는 지혜
허망한 웃음보다 처절한 통곡이 필요하다. 회개의 눈물 속에 참된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부한 자들에게 들으라고 경고한다. 그들에게 임할 심판과 고생으로 통곡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5:1절).
‘고생’은 헬라어로 ‘탈라이포리아’다. ‘비참한 처지’를 의미한다. 종말적 심판을 떠올리게 하는 무서운 단어다. 부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부자가 모두 악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를 잘못 사용하면 통곡해야 할 만큼 큰 죄가 된다. 그들의 재물은 썩었고, 옷은 좀먹었으며 금은은 녹이 슬었다(2-3절).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런가? 말세에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쌓았기 때문이다. 밭에서 추수한 일꾼에게 정당한 삯을 주지 않는 악행으로 모은 부당한 재물이기 때문이다.
약자인 일꾼이 그 부당함에 대해 대항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억울한 일꾼의 울부짖는 소리가 만군의 주에게는 너무도 크게 들린다. 주님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절대 외면치 않고 갚아주신다. 고통당하는 일꾼의 소리를 외면한 채 사치하고 방종 하는 부자를 주님은 결코 가만히 두지 않으신다. 억울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만 살찌우기에 급급한 부자들에게 살육의 날이 임한다. 그들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떠났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말씀을 따라 살려는 의인들을 정죄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부자라도 불의하면 심판의 날이 있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의 소유에 기댄 헛된 웃음인가,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에 대한 처절한 통곡인가? 내가 겸손히 기도하며 손 내밀어야 할 가난한 의인은 누구인가?
Photo by joshua earl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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