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목) QT_좋은 의도가 불러온 전운(戰雲)
- Chang Yong Park

- Dec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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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11.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14.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 열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그들의 조상들의 가문의 수령으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천부장들이라 15.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17.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18.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19.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하니라"(여호수아 22장 10-20절)
동쪽 지파가 지은 제단
이 속담은 사실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호수 전체를 흙탕물로 만들 수 있다.” 두 지파 반의 신앙적 행위가 많은 사람을 분노케 하였다. 여호수아의 권면과 축복을 받은 요단강 동편의 지파들은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들은 돌아가는 길에 큰 제단을 세웠다(10절). 무슨 연유였을까? 여호수아서의 기자는 처음부터 그들이 제단을 쌓은 연유에 대해 밝히지 않고, 다른 지파들의 반응을 전한다. 요단강 서편의 아홉 지파 반은 실로에 모여, 그들과 싸우러 가려는 제스처를 취한다(12절).
히브리어 원문은 그들이 ‘그릴롯’이라는 곳에 제단을 세웠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것을 고유명사로 해석하지 않는다. ‘인접한 지역’ 혹은 ‘경계선’을 뜻하는 본래의 의미로 보아, 두 지파 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처음으로 머물렀던 길갈에 제단을 세우게 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두 지파 반이 길갈에 건축한 제단은 실로 큰 것이었다. 요단 강 서편의 지파들은 이들이 제단을 세운 행위를 율법을 범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율법은 제사는 장막에서만 드릴 수 있다고 규정한다(레17:1-9). 또한, 제단은 제물을 드리는 곳이기에, 제물의 소유권을 자신들이 가지겠다는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이것을 건축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두 지파 반은 신앙을 버린 것으로 여겨졌으며, 강의 서편 지파들은 이것에 크게 분노하였다.
나의 신앙을 위한 행위가 오히려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을 오해하게 할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가?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요단강 서쪽의 지파들은 실로에 모여 다시금 전쟁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출정하기 전, 먼저 두 지파 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다. 제사장 비느하스를 비롯하여 지파별 한 명의 대표가 포함된 사절단은 강을 건너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아갔다.
특이할 점은, 여호수아서의 기자는 요단강 동편의 제단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요단강 서편의 백성들에게로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9절은 요단강 동편의 지파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길르앗으로 갔다고 말한다. 11절부터 14절은 모두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이름으로 요단강 서편의 지파들을 묶고 있으며, 16절은 ‘여호와의 온 회중’이라는 표현으로, 요단강 동편의 지파들을 이스라엘에서 배제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19절에서는 요단강 서편의 땅이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이기에 넘어와서 살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핏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구약의 맥락이며, 이스라엘 역사의 초입에 대한 서술이지만 여호수아서의 기자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신앙에서 찾고 있다. 민족성이 같다 하더라도, 신앙에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과 ‘여호와의 온 회중’이라는 테두리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기자의 단호한 의지가 엿보인다.
나는 하나님의 공동체에 들어오기에 합당한 신앙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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