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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화) QT_음녀를 만나다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Dec 5, 2023
  • 3 min read

"10.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11.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12.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13.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14.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15.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16.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17.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19.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20.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21.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22.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23.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24.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25.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26.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27.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언 7장 10-27절)


나를 기다리다


음녀의 손길을 뿌리쳐야, 견고하게 영적 뿌리를 내린다. 지혜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젊은이는 자신이 향한 집에서 음녀를 만난다. 저자는 그 여인을 가리켜 간교한 여인으로 기록한다. ‘간교한 여인’의 히브리 원어 '이솨 웨네추라 트레브'는 '마음을 숨긴 여자'라는 뜻으로 젊은이를 맞이하는 이 여인의 음흉함을 표현하고 있다.


음녀는 떠들며 완악하고 그 발이 집에 머무르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유혹에 넘어올 사내를 찾느라 분주하다. 그러다 지혜의 울타리를 벗어난 젊은이와 같은 미련한 자를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15절) 기다렸다는 말이다. 그러나 간교한 음녀의 이 말에는 숨은 의도가 있다. 미련한 젊은이는 이를 사랑인 줄 알고 음녀가 마련한 잠자리로 들어간다. 결국, 젊은이는 음녀가 주는 희락에 빠져 지혜의 울타리로 돌아가지 못한다.


음녀와 같은 악은 '우는 사자와 같이'(벧5:8)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혜로부터 멀어져 미련한 채 갈팡질팡하는 우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고 우리 귀에 속삭인다. 그 말속에는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 기다렸다'라는 진짜 목적이 숨겨져 있다. 미련한 우리는 그 말을 사랑이라 해석한다. 그리고 악의 품에 안겨 오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악에 달려가고 있진 않은가?


그곳은 죽음의 집


음녀를 따라가는 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다. 음녀의 집으로 향하는 미련한 젊은이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음녀의 달콤한 품이다. 음녀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즐겁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지혜자의 해석은 젊은이의 감정과 정반대다.


그의 모습에 대한 지혜자의 3가지 묘사가 있다. 1) 첫 번째 해석은 도수장에 끌려가는 소다. 도수장에 끌려가는 소는 자신이 죽으러 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음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젊은이 역시 자신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2) 두 번째 해석은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메이는 모습이다. 젊은이는 자신이 음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큰 벌을 받게 될 것을 알지 못한다. 너무 미련한 나머지 죄를 구분하지 못함을 지혜자는 지적한다.


3) 세 번째 해석은 화살이 간을 뚫게 될 것을 모르는 것이다. 결국, 젊은이의 걸음 끝에는 죽음이 있음을 말한다. 마지막 해석은 죽을 것을 알지 못하고 그물에 뛰어드는 새로 표현한다. 본디 새는 작은 위협에도 멀찌감치 달아난다. 그런데 지혜자는 젊은이를 그물로 들어가는 새로 빗대어 말한다. 이는 곧 음녀의 집으로 향하는 젊은이의 미련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달콤한 음녀의 손짓에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다. 웃음 지으며 음녀의 집으로 가볍게 걸어가는 젊은이와 다를 바 없다. 우리의 가벼운 걸음이 음녀의 집에 도착할 때, 우리에게 닥쳐올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만큼 음녀의 유혹은 달콤하고 치명적이다. 음녀는 미련한 모습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해 휘청거리며 헤매는 우리를 기다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지혜의 울타리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음녀의 유혹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가?


Photo byrico reutiman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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