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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금) QT_도피성과 대제사장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Dec 16, 2022
  • 3 min read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여호수아 20장 1-9절)


땅 분배의 정점


가나안 땅 분배의 정점은 도피성 제정이다. 가나안 땅 분배는 도피성을 지정하는 것으로 정점을 찍는다. 땅 분배는 단순히 살아갈 땅을 분배하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다.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도피성은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편에 세 곳, 서편에 세 곳이 지정되었다. 지도로 그 위치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을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북쪽, 중앙, 남쪽에 하나씩 있다. 즉 이스라엘의 어느 지역에서도 하룻길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도피성을 마련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신 19:6절)는 말씀에 나타난다. 도피성이 멀리 있어서, 피하지 못하고 잡혀 죽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도피성이 하나님의 사랑의 정점인 또 다른 이유는 차별하지 않는 데 있다.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그들 중에 거류하는 외국인들에게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온 인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방편이다.


또한, 부지 중에 실수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피에는 피, 이에는 이’의 법이 보편적이었다. 실수 여부와 관계없이 결과만을 놓고 판단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시기에 도피성이라는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가나안 땅 분배의 정점을 찍으신 것이다.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날


참 자유는 진정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얻게 되었다. 도피성으로 피한 자들이 자유를 얻게 되는 날은 둘 중 하나다(6절). 먼저는 ‘회중 앞에서 재판받는 날’이다. 공식적인 재판을 받음으로 자유를 얻어 자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재판의 과정에서 자신의 부지, 실수라는 것이 입증되어야만 한다.


다른 하나는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오래 산다면 계속해서 도피성에 머물러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피성의 제정에 하나님의 사랑이 묻어나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도피성은 누구든지 달려가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는 도피성 제도가 상징하는 바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도피성은 예수님이시다.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가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진정한 도피성이시다.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여섯 도피성들의 이름이 지니는 뜻을 그리스도와 연관 지어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거룩한 곳’을 뜻하는 ‘게데스’는 성전 되신 그리스도를(요 2:19), ‘어깨’를 뜻하는 ‘세겜’은 정사(政事)를 어깨에 멘 그리스도를(사 9:6), ‘교제’를 뜻하는 ‘헤브론’은 신자가 하나님과 교제케 하시는 그리스도를(고후 5:18-19), ‘요새’를 뜻하는 ‘베셀’은 성도들이 피할 요새가 되시는 그리스도를(시 91:2), ‘높은 곳’을 뜻하는 ‘라못’은 성도들을 높은 하늘에 앉게 하시는 그리스도를(엡 2:6), ‘기쁨’을 뜻하는 ‘골란’은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그리스도를(요 15:11) 각각 상징한다는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또한, 예수님은 진정한 대제사장이시다.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진정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


우리가 진정한 도피성 안에 거하면 영원히 죽지 않으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또한 영원히 살게 된다. 도피성 바깥의 세상은 피에는 피, 이에는 이의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피성으로 피하는 것이다.


나는 진정한 도피성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는가? 나는 그 누군가의 도피성이 되고 있는가?


Photo by James Laderout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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