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수) QT_동상이몽
- Chang Yong Park

- Jan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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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마가복음 9장 30-37절)
주님과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자들
복음을 이해하지 못할 때 세상의 방식으로 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구원의 완성에 대한 말씀이셨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고, 주님이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제자들의 시선이 주님의 구원 사역에 머무르지 않고 있는 첫 번째 증거가 된다. 후에 가버나움에 머무르실 때 제자들이 서로 화를 내며 토론하는 것을 들으신다. 그들의 토론의 주제는 “누가 더 큰 자냐?”하는 것이었다(34절). 제자들의 시선이 주님의 구원사역에 머무르지 않고 있는 두 번째 증거가 된다.
제자들은 병든 자를 고치고, 물 위를 걸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서 빨리 유대를 점령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열두 사도인 자신들이 높은 자리에 서게 될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이지 않을까? 주님의 구원 사역에는 관심 없이 자신들의 높아짐에만 관심을 보이는 제자들을 보며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들의 교만이 어떻게 꺾어지길 바라셨을까?
시선의 변화를 요구하시는 주님
교만함으로 가득 차 다투던 제자들 앞으로 주님께서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37절).” 그 시대의 어린이는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를 빗대어 제자들을 교육하신다. 제자들의 교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아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높아짐을 위해 오신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신의 높아짐을 위해 다툰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작은 아이 하나를 위해서 세상에 오셨음을 말씀하셨다.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설명하고 계신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하찮은 어린아이 하나를 위해서도 죽으심을 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서로를 영접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곧,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제자들의 높아짐을 위해서가 아닌,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제자들의 시선을 변화시키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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