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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목) QT_약한 자의 편에서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Jan 14, 2021
  • 2 min read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마가복음 9장 38-50절)


내가 기준이 되는 순간 열리는 저주의 문


작은 자에게 한 일이 곧 그리스도께 한 일이다. 요한이 예수님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그것을 막았습니다(38절)”라고 말한다. 제자들을 따르지 않는 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다는 것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불편했을까? 이미 앞 선 본문에 귀신을 내쫓지 못하는 자신들을 믿음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질책을 받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제자들은 파벌주의 혹은 서열주의에 얽매여 있었다. 그런데 감히 열두 제자에 끼지 못하는 무명의 사람이 귀신을 내쫓다니, 제자들로는 그를 허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제자들의 태도가 무명의 신앙인을 예수의 무리에 들지 못하게 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주님은 요한을 나무라시며 그것을 금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났다는 것은 무명의 신앙인 역시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비록 예수님의 무리를 따를 만큼 성장한 신앙인이 아닌, 연약한 자라 할지라도 주님을 믿는 신앙만큼은 가짜가 아니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에게만 주어진 줄 알았던 권세가,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무명의 신앙인에게도 주어진 것이 불편하여, 그것을 금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이유로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들은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또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니라(42절).” 이 말씀에 제자들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소자를 향한 태도


우리와 같은 신앙의 크기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 신앙인들의 자세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교회의 일에 열심히 참여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는 자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 성도의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신앙인들을 보며 정죄하고 넘어뜨린다. 이러한 교만함의 경지에 이른 신앙인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우리의 육신이 작은 자를 실족케 한다면 우리의 육신을 찍어 내어버리는 것이 구더기가 죽지도 않으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


우리는 소금이다. 소금은 주님께서 성도의 정체성을 이야기하실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곧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서로가 화목하였을 때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신앙적 기준으로 작은 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 더욱 함께하고 돌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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