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화) QT_영원을 사는 사람들
- Chang Yong Park

- Jan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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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가복음 10장 23~31절)
영원한 삶의 방식
신앙의 성장이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신앙생활을 해도 극적인 삶의 변화가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일 예배 때마다 듣는 ‘하나님 나라’와 나의 삶의 간극을 메꿀 법은 없을까?
부자청년은 어려서부터 율법의 가르침을 잘 따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보인다(막 10:19). 그러나 그는 조금 전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에게 있는 고민을 털어놨다. 무엇을 ‘더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느냐는 것이다(17절). 팀 켈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특징으로 ‘공허함’과 ‘불안’을 말한다. 수고와 성과 뒤에 찾아오는 이 두 가지 감정 때문에 그들은 결국 다시 무언가를 ‘더 한다’. 예수님은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 가진 고민에 사랑을 느끼시고는, 한 가지를 제안하신다. 그것은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이었다(21절). 그러나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예수를 떠났다(22절).
오늘 예수님은 그 장면을 목격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23절). 여기서 ‘들어가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이세르코마이’는 ‘경험을 시작하다’는 뜻이 있다[LN].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의존하는데서 경험되어지는데,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그만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세윤 박사는 ‘구원이란 무엇인가’에서 구원을 가리켜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감기처럼 죽음에 ‘걸려있고’, 그러므로 죽음과 그 증상들인 악과 고난으로부터 해방(구원)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게 만들었는데, 하나님은 유한한 피조물이 기댈 수 있는 무한하신 자원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긴 인간은 제한된 자원 안에서 불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조금 더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세상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님을 떠난 피조 세계의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나를 믿고 그 돈(자원)을 맡겨봐”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려면,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방식에 당혹스러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24절). 제자들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말씀에 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26절).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얘기였다(27절).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 당신의 운전석을 내어드리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 보여주시기 위해 “부자로서 가난하게 되셨다”(고후 8:9).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로서 우주에서 가장 큰 부자였지만 기꺼이 빈자의 자리로 내려오셨다(빌 2:6). 그리고 십자가로 향하고는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의 왕이 되셨다(빌 2:8-11a).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십자가로 향하신 이유를 가리켜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라고 말한다(히 12:2). 그것은 어떤 기쁨인가? 구원할 자녀들에 대한 기쁨이요, 다가오는 나라에 대한 기쁨이다. 예수님은 가장 큰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셨다. 이제 예수님은 영원한 기쁨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두려움이 아닌 기쁨이, 죽음이 아닌 부활이 이끄는 이 길은 예수님이 죽음으로 이루신 새롭고 살 길이다(히 10:20). 이 길로 들어서는 자 곧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재산과, 가족 을 “버린 자는 …”, “현세에 있어(버린 것을)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30a절). 여기서 버렸다는 말은 ‘(잠시) 두고 떠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다.
예수님은 유능한 펀드매니저로 우리가 맡긴 것들을 더욱 건강히 다루신다. 또한 새로운 가족과 자산도 만나게 하시는데 ‘교회’ 공동체다. 이것이 ‘백 배’가 말하는 참 의미다. 뿐만 아니라 ‘내세에’에 대한 영생의 약속이 있는데(30b절), 내세는 이 시대의 끝에 만나는 ‘새 시대’로 하나님 나라다. 부자청년이 원했던 것은, 새로운 가족 안에서 먼저 경험되어진다(행 4:32-37). 교회는 다가오는 모든 어려움을 함께 이기는 새 나라의 가족이다(3:35). 새로운 가족의 가장은 하나님이다. 당신은 더 이상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선택이 남았다. 기쁨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다시 공허하고 불안한 길로 돌아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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