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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월) QT_이신득의(Justification by Faith)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Jan 23, 2023
  • 3 min read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로마서 9장 1-18절)


이신득의(Justfication by Faith)


너무나 비싼 것은 값으로 살 수 없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본문에서는 이신득의(Justfication by Faith)라는 하나의 포괄적인 주제에 단계별로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본문은 이신득의 진리가 계시된 시점에서, 불신한 이스라엘 동포로 인한 바울의 비애를 보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기에게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본문은 이에 대해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러한 동족을 보면서 자신의 애끊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유효성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유대인들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무효가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혈통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 대상으로서 참 이스라엘의 무리에 포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특권을 지녔다 하여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다 무조건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6-13절). 오직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만이 구원 얻었음을 증거 한다. 이스라엘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무효화 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인간이 시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


선택에 대한 주권은 전적으로 하나님 자기 뜻에 따른 선택과 유기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인간이 불공정하다고 할 수 있느냐에 질문을 제기한 뒤, 그럴 수 없노라고 단언한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 중에서 이삭만이 그리고 이삭의 자녀 중에서 야곱만이 택함을 받아 참 이스라엘의 계보를 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만으로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바울의 논지는 유대인들로부터 반감을 살 소지가 충분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구원이 확정되었다고 충분히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택과 유기에 있어 하나님의 기준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마음이다. 더 이상의 다른 기준은 없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자의적 선택에 대해서 다룬 후 우리 인간이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해 시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소원이나 노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음을 지적한다(16절).


하나님의 선택은 전적으로 그분의 ‘헤세드’(자비, 긍휼)에 기초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철저하게 타락한 상태에 있어서 아무도 자신의 행위로는 의에 이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18절). 여기서 ‘하고자 하시는’으로 번역된 ‘델레이’는 현재 시제이며, ‘바라다’, ‘원하다’, ‘기뻐하다’의 뜻이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노력이나 혹은 의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이 동사를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의 선택된 자녀로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Photo by Josh Boo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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