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화) QT_시련과 고통
- Chang Yong Park

- Jan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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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2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4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5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6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7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8 악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악한 자라 하느니라 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13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14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5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18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19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21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 22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그 둘의 멸망을 누가 알랴"(잠언 24장 1-22절)
악한 자의 형통
신기한 주님을 좇지 않으면, 신기루를 좇는다. 악한 자들을 부러워하고 가까이하는 것은 신기루를 좇는 것과 같다. 본문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그들과 교제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제일 먼저 교훈한다. 성도가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반드시 추구해야 할 것과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추구해야 할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지혜이다. 그리고 경계해야 할 것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1절). ‘악인’이라는 말은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넘어선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여기서 부러워한다는 것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며 동경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가까이하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맺거나 그 대열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부러움이란 어떤 부러움일까? 그 부러움은 악인이 아닌 악인이 누리는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악인과 함께 있으려는 것도 악인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누리는 형통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잠언 기자는 이러한 악인들과의 교제를 거듭 경고한다. 그 이유는 2절에서 설명한다.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2절). 여기서 ‘강포를’에 해당하는 ‘쇼드’는 ‘폭력’, ‘멸망’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품고’에 해당하는 ‘하가’는 ‘깊이 묵상하다.’, ‘깊이 생각하다’라는 의미이다. 2절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폭행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NIV, for their hearts plot violence). 즉, 악한 자들은 이기심과 탐심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오로지 남을 해치는 것만 생각한다.
악한 자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좇는 것은 신기루를 좇는 것과 같다.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조만간 완전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반드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악인의 일시적 형통에 대해 부러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시련과 고통
시련과 고통은 마음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시련과 고통은 때로 하나님의 참된 사랑에서 나오기도 한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10절). 여기서 환난으로 번역된 ‘차라’와 미약함으로 번역된 ‘차르’는 발음이 비슷하게 병치를 시켰다. 이것은 그 의미를 보다 강조한 일종의 언어유희이다. 수사법을 사용하여 시련과 고통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해보면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 국난을 통해 충신과 간신이 가려진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신앙의 인격과 지혜의 진정성 여부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시련과 고통이 올 때 더욱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시험당하는 자에게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 담대하게 하나님을 붙잡을 때 그 시험이 변하여 하늘의 복으로 임하게 된다.
나는 악한 자의 형통을 어떻게 부러워한 적이 있는가? 내게 주어진 시련과 고통이 나를 어떻게 힘들게 하는가?
Photo by uday mitta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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