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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수) QT_공평과 성실을 좇는 삶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Jan 24, 2024
  • 3 min read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28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29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30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31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32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33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34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언 24장 23-34절)


유죄유죄 무죄무죄


세상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그러나 재판은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도 정의로워야 한다. 오늘 본문부터 24절까지는 주로 ‘재판’과 ‘일’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재판할 때 사사로운 감정이나 뇌물 같은 금전적인 일로 말미암아 불공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은 율법에서도 금하는 일이다(신1:17). 특별히, 오늘 본문은 “악인의 낯을 봐주지 말라”라고 한다. 즉, 편파적인 재판으로 죄를 옳은 일로 바꾸는 걸 금한다. 이러한 재판을 한 재판관은 백성에게 저주와 미움을 받게 된다(23-24절).


반대로, 죄에 대해 옳게 견책하는 자는 정의를 지킨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25절). 재판은 사회의 평등을 유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26절의 ‘적당한 말’에서 ‘적당한’의 원어는 ‘네코힘’이다. 이 단어의 뜻은 ‘올바름’, ‘정직’, ‘공정’을 뜻한다. 따라서 어려운 관계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대답은 상대로부터 신뢰와 존중을 얻게 한다.


27절은 일의 우선순위에 대한 교훈을 말한다. ‘집을 세운다’라는 의미는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결혼 자금을 준비하여 아내를 맞이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혹, 당시 주요 사업이 농업이라, 공동체성을 갖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지혜자는 우선순위를 지켜 공동체 지체들이 더 동참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증언도 공정하고 정직해야 하는데, 이 말은 “위증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원한을 갚기 위해 속임수를 써서도 안 된다(28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에서는 백성들이 고통받게 된다. 지도자들을 향해 원망을 품는다. ‘유죄유죄 무죄무죄’, 즉, 죄가 있으면 유죄이고, 죄가 없으면 무죄인 사회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다.


건강한 가정과 인생을 세워가는 삶


게으름은 삶의 주름을 늘게 하지만, 근면은 삶의 근력을 키운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건강한 직업관이 필요하다(27절).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안정이 뒷받침되어야 가정을 꾸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잠언 기자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회고하며 교훈을 준다(30-34절). 기자는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보고 한 가지 깨닫는다. 그것은 게으른 자와 지혜 없는 자는 같은 부류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 게으르지 않다. 저자가 볼 때, 게으른 자의 밭은 가시덤불과 거친 풀로 덮혔다. 담은 무너져 무방비 상태였다. 곡식과 포도가 자랄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수확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잠언 기자는 그 광경을 보고 그 자리에 서서 생각해 보았다(32절). 그리고 교훈을 받았다. 교훈을 받았다는 것은 상황을 관찰하며 지혜를 얻었다는 의미다. 기자는 게으르면 가난이 강도처럼, 곤핍이 군사같이 닥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강도와 군사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또한, 전혀 막을 수 없는 침략자들이다. 가난은 게으른 자들을 급습한다. 게으른 자들은 침략해 오는 가난을 절대 막을 수 없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누워 있자”라고 하면 망한다. 진정한 지혜는 끈질기고도 지속해서 일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가난과 빈곤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게으름과 안이함으로 인한 가난과 빈곤은 책망을 받을 일이다.


건실한 가정, 그리고 복음과 믿음의 결실을 위해서도 수고하라는 권면을 기억해야 한다(롬 12:11 ; 히 6:12 ; 벧후 1:8).


나는 나의 일에 있어서 부지런하고 성실한가? 그렇다면 복음과 믿음의 결실을 위해서도 부지런하고 성실한가?


Photo by jonny gio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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