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수) QT_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
- Chang Yong Park

- Jan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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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10장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로마서 9장 30절-10장 4절)
믿음에서 난 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는, 의로운 분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난 의다. 사도 바울은 9장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문제를 이해시키려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1-13절)과 선택의 원리들(14-29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다. 이러한 논증 후에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30절)라고 말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데 바울은 이스라엘의 민족 구원 문제를 다루면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책임도 있음을 강조한다(31-33절).
바울은 인간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왜냐하면,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30절)과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31절)을 비교하여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가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이방인은 복음을 듣고 믿기 전까지 하나님의 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믿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방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를 얻는 자가 되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하였기 때문이었다(32절).
하나님의 의를 얻겠다는 이스라엘의 열심은 하나님의 의를 개인의 공로와 업적을 자랑하는 육신의 법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잘못된 그들의 열심은 부딪칠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자가 아닌 부딪치는 자가 되게 하였다. 바울은 이사야 28장 1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바로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라고 말하였다(33절).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는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인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이스라엘의 오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선하다고 할 수 없다. 바울은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을 너무도 사랑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되더라도 자신의 동족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였을 정도다(9:1-3). 바울은 10장에서도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믿음에서 난 의에 대해 논증한다.
‘내 마음’(1절)이라고 표현한 헬라어 ‘에메스 카르디아스’의 ‘에메스’(나의)는 헬라어 ‘무’(나의)보다 더 강한 표현으로서 바울의 안타까운 심정을 잘 보여준다(호크마주석). 바울이 이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동족의 구원 문제를 놓고 안타까워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힘써 자기 의를 세우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2-3절).
여기서 ‘모르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그노운테스’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 지식이 없어서 기인한 ‘오해’를 의미한다(Meyer). 또한, ‘힘써’에 해당하는 헬라어 ‘제툰테스’의 시제는 현재 분사형이다. 이 단어의 시제는 이스라엘이 자기 의를 세우려고 계속 성실하게 살아온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할 수 없다. 율법의 마침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율법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4절).
나의 열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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