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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금) QT_모두를 향한 구원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Jan 30, 2023
  • 3 min read

Updated: Feb 3, 2023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로마서 11장 13-24절)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 이방인의 구원이 구원 받은 유대인을 빼내려는 듯하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이방인들을 향해 말한다.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것을 유대인들이 이를 시기해서라도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14절). 복음을 거절한 유대인의 자리에 이방인이 들어옴으로 이는 세상의 화목이 된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과 같다(15절).

사도 바울은 이런 관계를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첫 번째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이다. 개역개정에서 번역한 이 표현은 의역이다. 원문에는 ‘첫 열매’(헬라어: 아파르케)로 말씀한다. 유대인은 모든 민족 가운데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다. 첫 열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모든 민족 또한 거룩하게 된다. 이는 뿌리와 가지의 관계로도 설명이 된다. 뿌리로서 이스라엘은 가지인 이방인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16절).

두 번째는 ‘접붙임’이다. 참감람나무(이스라엘)에게 돌감람나무(이방인)가 접붙임이 되어 진액을 공급받게 되었다. 실제 접붙임을 할 때는 그 반대로 진행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야생의 돌감람나무와 같은 이방인이 이스라엘 덕분에 구원을 얻게 되었음을 설명하고자 이 비유를 들고 있다.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절하고 버림받은 바 되었지만, 누구든지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돌아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10:13).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자리에 들어왔다고 해서 교만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22절).

‘인자함’(헬라어: 크레스토테스)은 원문에서 ‘선하심, 관대함’이라는 뜻이다. 또 ‘준엄함’(헬라어: 아포토미아)은 ‘엄격함’을 뜻한다. 이방인들 역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이방인 역시도 복음을 거절하면 엄격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버림받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말한다. 하나님은 접붙이실 능력이 있으시므로 유대인들에게도 여전히 구원의 길은 열려 있다(23절). 이방인도 접붙임을 통해 좋은 감람나무의 영양분을 받음을 생각해 볼 때, 유대인들에게는 접붙임이 더 쉬운 일이다(24절).

그저 감사와 은혜

구원 받은 자에게는 감사함밖에 남지 않는다. 사도 바울의 비유를 통해 보면, 우리는 그저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인도하셨다. 그런 가운데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구원의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마느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달려 있다.

그러나 믿음마저 나의 노력으로 갖지 못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거저 주신 구원의 은혜에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방인’에게 주신 구원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봐도 감사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구원에 대한 감사가 있는가? 오늘도 나에게 주신 구원은 기적으로 다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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