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월) QT_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 Chang Yong Park

- Feb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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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마태복음 22장 15-22절)
올무를 놓는 무리들
악인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 바리새인들의 관심사는 온통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는가 였다. 그래서 늘 상의했다(15절). 그들에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진리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퍅하고 딱딱하게 굳은 마음에는 조금도 부드러운 면이 없었다. 바리새인들만이 아니었다. 헤롯당도 마찬가지였다.
친 로마적 성향의 헤롯당은 바리새인들과 늘 적대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예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거부하며, 예수님을 죽이려는 일에는 서로 하나가 됐다. 이처럼 악함은 서로 연합한다. 그들은 예수님께 아첨하며 묻는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옳습니까?”(17절).
이건 단순히 세금 문제가 아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예민한 이슈를 건든 것이다. ‘세’는 헬라어로 ‘켄손’으로서, 모든 성인들이 해마다 바치는 인두세를 뜻한다. 이로써 로마에 점령당하고 있는 현실을, 좀 더 고통스럽게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때 만약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대답하시면 민족의 배반자로 몰고 갈 수 있었고,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대답하시면 로마의 통치에 대한 반란을 선동했다고 몰고 갈 수도 있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속셈으로만 가득했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 진리에 대해 진정 부드럽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 나의 기대와 맞지 않는 예수님의 음성에 강퍅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진 않은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통치보다 먼저 하나님의 통치를 인식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셈을 바로 아셨다. 그리고 그들의 악함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책망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18절). 예수님은 중심을 아신다(막 2:8). 예수님은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말씀하신다. 당시 데나리온에는 가이사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1절).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저버렸기에 고통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것이었다. 로마의 식민통치로 인해 분노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 차갑게 반응했던 스스로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했다. 그들의 심령에 이미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형상 앞에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순전함이 회복됐어야 했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다스리고 있는 가이사는 그들의 진짜 주인이 아니다. 그들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급선무였다.
내 심령 가운에 진하게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 앞에, 나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기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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