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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화) QT_부활을 논쟁하다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Feb 15, 2022
  • 2 min read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마태복음 22장 23-33절)


사두개인들의 소모적인 질문


사두개인은 어리석었고 예수님은 지혜로우셨다. 사두개인들은 지극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다르게, 부활을 믿지 않았다(행 23:8). 그랬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부활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을 시작한다. 계대결혼 제도를 가지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반박하려 한다.


계대결혼이란 형이 자손 없이 죽었을 경우,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낳은 첫 아이를 죽은 형의 아들로 간주하여 기업을 잇는 제도다. 예수님은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오해했다고 단언하셨다. 그들의 관심은 부활에 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소모적인 논쟁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에 흠집 내기를 원했다.


이는 불신 현대인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태도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가지고, 설령 성경 지식을 많이 알아도 그 안에 담긴 목적과 의도에는 무관심한 채 궤변을 늘어놓는다. 자기 생각에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심이나 진리의 목적과 어긋나는 모든 궤변과 질문은 비본질적이며 소모적이다.


물론 우리는 불신 현대인들과 충분히 대화하며 온유하고 따뜻한 자세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진리를 수용하려는 조금의 마음도 없이 이야기만 늘어놓기 좋아하는 대화는 결국 평행선을 그릴 뿐이다. 대화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고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문에도 현답을 주시는 분이시다. 나는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나만의 생각에 가로막혀, 더 깊은 진리의 은혜를 깨닫기를 거부하고 있진 않은가?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힘쓰는가?


부활의 확실성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잘못은, 성경과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에 사용된 헬라어 ‘메 에이도테스’는, 원인을 나타내는 분사형으로써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사두개인들의 실상은, 그들 자신의 정경 즉 모세오경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신다.


부활 때에는 결혼이 필요 없다. 우리의 몸도 질적으로 바뀌게 된다. 결혼은 이 세상에서 인류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허락하신 제도이지만 천국에선 그렇지 않다. 결혼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하고 천국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져 가는 중요한 공동체이지만, 천국에서는 더는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 천국은 말 그대로 천국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출애굽기 3:6절을 인용하시며 부활의 확실성에 관해 설명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실 당시는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후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들이 죽어서 사라진 게 아니라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을 믿고 천국을 소망한다.


나는 부활의 영광에 소망을 두고 있는가? 혹시 이 땅의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쏟고 사느라, 천국의 영광을 소홀히 여기고 있진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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