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목) QT_본질은 요란하지 않다
- Chang Yong Park

- Feb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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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장 1-12절)
본질
본질은 요란하지 않다. 가짜의 특징은 화려하다. 진짜가 아니기에 자신이 없다. 그래서 화려하게 본인을 꾸민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은 화려하다. 누가 봐도 대단해 보인다. 그들의 가르침을 들으면 입이 쩍 벌어진다. 그들의 복장도 화려하다. ‘경문’이란 히브리어로 ‘테필린’인데 신명기 6장 8절 말씀에 근거해서 생긴 관습이다. 말씀을 손목과 미간에 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적은 종이를 작은 상자에 담아 손목과 미간에 묶고 있었다. ‘옷술’을 길게 한다는 말은 민수기 15장 38-41절과 신명기 22장 12절의 말씀 때문에 시작되었다. 파란 실과 하얀 실을 꼬아서 만든 후 겉옷의 네 귀퉁이에 달았던 술이다. 히브리어로 ‘지지트’라고 부른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옷술을 크게 해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늘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대접받는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 속에는 속이려는 몸부림이 들어 있다. 본질이 빠진 텅 빈 노력이 들어 있다. 본질은 요란하지 않다.
예수님의 탄생은 요란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겸손했다.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주로 사역을 감추신다. 감추려고 하는데 드러난다. 진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요란함 속에 감춰지면 안 된다. 요란함을 내려놓아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
진실한 신앙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진짜다. 바리새인은 너무나 요란하고 화려해서 스스로 속았다. 사람들의 대접과 인정에 속는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처럼 우쭐한다. 우리의 신앙은 요란함이 아니다. 본질을 추구하는 진솔함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면 자꾸 꾸미게 된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진실하게 된다. 신앙은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진솔하게 인정할 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바리새인과 같은 겉모습의 화려함은 내려놓고, 소박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진실함이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화려함과 요란함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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