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목) QT_어떤 관계로 남고자 하는가?
- Chang Yong Park

- Feb 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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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15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16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19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20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24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5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6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잠언 27장 14-27절)
저주 같은 관계
가장 복으로 가득 차야 할 관계가 때로는 복수로 가득 찬다. 본 단락을 통해 솔로몬은 관계의 모델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로 저주스러운 관계의 예를 보여준다(14-16절). 솔로몬은 ‘축복하다’와 ‘저주하다’를 대구 용법으로 사용한다(14절). 아침에 이웃을 축복하는 누군가는 필시 제사장이거나, 그에 준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축복은 오히려 사람들의 잠을 깨운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부자연스럽고 비상식적인 이러한 ‘신앙 행위’가 타인의 마음에 ‘신앙 같지 않은 행위’로 비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관계 중에 가장 축복의 관계가 부부관계이다. 그러나 자꾸 다투게 된다면, 그것만큼 저주스러운 일은 없다(15-16절). 우리는 멈추지 않고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이 배우자를 괴롭힌다. 이런 배우자는 바람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제어하기 어렵다. 오른손은 ‘능력’, ‘특권’, ‘아름다움’ 등을 상징한다. 오른손에 기름이 발라져 있다는 의미는 배우자로 인하여 “권위에 손상을 입는다”라는 것이다.
나는 타인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신앙의 호의들이 타인을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서로에게 복이 되는 관계
니체는 “적이 오히려 경쟁자로 복이 된다.”라고 말한다. 지혜자가 제시하는 두 번째 관계의 모델은 앞선 유형과 상반된 형태이다. 서로에게 복이 되는 관계이다. 숫돌에 칼을 갈 때, 돌은 스스로 갈아내어 칼을 날카롭게 한다. 돌의 입장에서도, 칼로서도 이 작업이 편할 리 없다. 그러나 이 작업은 서로를 쓸모 있게 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때론 불편할 수 있는 관계를 통해 서로가 더 단련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관계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관계로 내모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것도, 자기 주인을 시중드는 것도 모두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이 불편을 감내하는 자는 각각 과실과 영화를 얻는다.
그러나 이 교훈을 듣는 자가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단련의 대상은 남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나만을 단련시킬 수 있다. 타인은 절대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21절). 미련한 자는 아무리 연단 해도 단련되지 않는다(22절). 지혜자는 사람을 ‘칭찬’으로 단련하라고 지적한다. 단련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에게 박하게 대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호의가 아니다.
나는 불편한 관계의 사람에게 등 돌리고만 있지는 않는가? 서로서로 날카롭게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의 관계의 지향점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자는 영원을 얻는다. 지혜자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관계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설명한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서로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23절부터 시작되는 본문의 마지막 단락은 양과 소를 치는 목자의 상황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에 등장하는 목자의 이미지를 종종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영혼 섬김이들의 사명과 연결시킨다.
이 땅의 모든 것들, 우리의 재물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영원한 면류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영혼들이다(살전2:19). 혹자는 우리가 영혼들을 위해 노력을 들이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혼을 섬기기 위해 시간과 재물을 드린 사람은 반드시 그 삯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혜자는 증언한다.
나의 관계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나는 영원을 상고하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Photo by asap rock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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