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월) QT_일곱 번째 저주
- Chang Yong Park

- Feb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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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3장 29-39절)
외식하는 자들
겉모습을 꾸미는 자들에겐 저주뿐이다.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저주하신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여주는 마지막 외식은 무엇일까?
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선지자들의 무덤과 비석을 치장하는데 굉장한 공을 들이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아니하였으리라”(30절). 라는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도덕성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저들의 교만함을 지적하신다. 그들은 “나는 우리 조상들과 달라, 나였다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였다. 후로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결국, 주님께서 말씀하셨듯 “나는 우리 조상과는 다르다”라고 말한 그들은 “스스로 증거함이로다”(31절) 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루었다. 그들 역시 조상의 자손인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며 그 조상의 남은 죄의 분량을 채우게 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외식하는 자들이 받게 될 구체적인 저주에 대해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33절)라는 말씀을 하신다. 여기서 ‘피하겠느냐’라는 표현은 가정법적 표현임과 동시에 심판이 피할 수 없이 닥치게 되었다는 강조적 표현이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말씀과 같이 주께서 보내신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구박하는 것(34절)으로 주님의 말씀을 이룬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모든 이에게 경고하신다. 그 경고의 말씀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이 결국엔 저주의 성취로 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고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는 자들에겐 기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 앞에 외식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저주의 실체
주님의 저주를 두려워해야 한다.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어지는 저주의 실체는 아벨의 피로부터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돌아가게 되는 것(35절)이다. 이 말씀은 저들의 조상에게 죽임을 당한 의인의 피에 대한 책임이 그대로 전가되었음을 뜻한다. 공동번역에서는 ‘피’를 ‘핏값’으로 번역하여 조상들의 악행에 더불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악행의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말하였다.
또한, 저주의 대상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에서 이 세대(36절)로 확장 시키신다. 비단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국한된 저주가 아니다. 율법주의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며 회개하지 못하는 모든 세대에게 저주가 있음을 최종적으로 선언하신 것이다.
그렇게 저주를 마치신 주님께서 한탄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37절). 한탄스러운 주님의 외침에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주님의 심정이 담겨있다.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할 그들의 삶의 터전은 황폐하여 버린 바 되어 주님을 탄식하게 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구원을 잃은 자들이 돼버리게 된다.
주님의 저주는 폭력적이지 않다. 저주를 두려워하여 돌이키는 자에겐 저주받은 자에게 주어지지 못하는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주어진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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