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월) QT_복음의 방향
- Chang Yong Park

- Feb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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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5장 14-21절)
나 자신에게로
다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15장 14절부터 시작되는 오늘 본문은 로마서 전체의 결론부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지금까지 기록된 복음에 대한 깊은 설명들이 어떤 동기와 배경에서 쓰이게 되었는지를 말해준다.
먼저 바울은 로마 교인들이 선함과 지식으로 서로를 능히 권하는 자임을 확신하면서 칭찬한다(14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된 자들이 겪는 갈등의 문제를 적절하게 다룰 선함과 지식이 로마 교회에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서로를 권할 만큼 충분한 선함과 지식이 있더라도 그들은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울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만 복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 우리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1:15).
바울은 이 편지를 사역의 후반부인 3차 선교여행이 끝나가는 즈음에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여전히 복음의 은혜를 상기하였기 때문에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가진 예수의 일꾼으로 여전히 흔들림 없이 서 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복음의 내용을 로마 교회에 대략 설명하려고 한 것은 바울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언제나 복음 안에서 자신을 점검하는 것을 스스로 서고 넘어짐의 기초로 삼았기에 교회의 서고 넘어짐이 거기에 있음을 안 것이다.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 또한, 복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도 여전히 복음이 필요하다. 회심 이후에도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복음과 상관없이 작동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복음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가? 내 마음은 복음으로 빚어져 가고 있는가?
복음이 없는 곳으로
성도는 복음이 밀어붙이는 곳으로 가야 한다. 바울이 복음의 은혜를 다시 상기시키기 원했던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 때문이다. 이 은혜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살아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방인들을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했던 일을 자랑하겠다고 말한다(17절). 이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자랑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은혜를 따라 자신이 복음의 제사장으로서(이방인들을 제물로 드리고,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려고) 사역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자랑하는가? 그것은 로마 교회가 그 복음을 다시 상기하여 구체적으로 복음에 반응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의 은혜 때문에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지금의 북알바니아 근처의 지역)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서 살았다. 그래서 자신은 선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가고자 했고, 이사야 52:15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사야의 예언적 비전을 성취하고자 하였다(21절). 이는 복음이 얼마나 거세게 자신을 선교사역에 몰아붙였는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후에 자신이 예루살렘에 들렀다가 서바나로(지금의 스페인) 갈 계획이 있고, 그 계획에 로마 교회가 동참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15:23-24). 복음이 자신을 선교에 몰두하게 했던 것처럼(로마에 가고자 했지만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로마 교회가 복음의 은혜를 다시 생각하여 구체적으로 복음에 반응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은혜의 복음 앞에 선다면 로마 교회도 스페인 선교에 동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들으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복음은 선교적이다. 복음은 끊임없이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을 찾아간다. 복음을 먼저 들은 사람을 통해서.
나를 통해 복음이 흘러가고 있는가?
Photo by Nolan Ken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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