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월) QT_복음의 구동 원리
- Chang Yong Park

- Feb 8, 2021
- 2 min read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마가복음 14장 22-31절)
‘나 하기’ 나름인 우리의 신앙?
종교와 복음은 다른 것이다. “종교의 구동 원리는 ‘나는 순종한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를 받아주신다’라는 개념이다. 반면 복음의 구동 원리는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은 날 용납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여전히 복음이 아닌 종교의 원리로 신앙을 이해한다. 머리로는 ‘예수님이 나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바른 삶을 살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 행동은 ‘내가 바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받아주신다’는 신념 위에서 이루어진다(팀 켈러).
이는 복음과 복음의 결과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 맡겼던 인생의 짐을 어느새 다시 빼앗아온다. 이들에게 복음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니다. 신앙이 ‘나 하기’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에, 늘 자기만족과 자기혐오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주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던 베드로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님은 스가랴 13:7을 인용하여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다(27절). 그러자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29절)라고 말하며 자신의 충성을 변호했다. 다른 사람을 실패자로 비하하며 자신의 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주님은 그도 실패할 것이라 예언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0절). 주님의 확신에 찬 말씀에 베드로는 강하게 항변했다(ἐκπερισσῶς: 힘있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1절)
베드로라서 가능한 말이었다. 수제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강한 믿음과 충성심이 믿음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믿음은 자신의 능력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마 16:24). 이는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던지는 것이다. 자아가 아닌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24에 쓰인 ‘부인하다(ἀπαρνέομαι)’는 베드로가 고백한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의 그것과 동일한 단어다.
주님은 ‘너의 능력을 부인하라’ 하셨지만, 베드로는 오히려 ‘힘있게’ 자신의 부인을 부정했다. 물론 그는 최선을 다했다. 다른 제자들은 도망쳤지만, 그는 주님이 심문받으신 장소까지 따라갔다(막 14:54). 그러나 우리는 그의 실패를 안다. 그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경험처럼,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모두에게 필요한 복음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종교가 아닌 복음이 필요하다. 신앙은 ‘나 하기’에 달려 있지 않다.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다.
우리의 ‘무능함’을 주님 안에서의 ‘가능함’으로 바꾸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찢으셨고(22절), 우리를 위하여 언약의 피를 흘리셨다(24절). 이를 통해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이미 용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더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짓말에 아직도 속고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 메시지를 거부하는 것이다.”(브레넌 매닝)
당신은 어떤가? 복음 안에 있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종교의 원리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