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목) QT_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기쁨
- Chang Yong Park

- Mar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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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편 4장 1-8절)
의의 하나님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에서 기도하라. 시편 4편의 유형은 시인의 고난 받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 탄원시’에 해당하며,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고백 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신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 가운데 고난 중에도 찬양할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을 가리켜 ‘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1절).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시편 ‘개인 탄원시’에 나타난 시인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시인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부를 때 자신의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용어를 하나님에게 수식하기 때문이다. 즉, 시인이 하나님을 ‘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은 시인이 의(義) 때문에 고난받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의 상황은 어떠한가? 시인은 부당하게 고소를 당하고 있으며 죄가 없음에도 비난을 받고 있다. 즉, 시인은 변호 받아야 할 위기에 처해있으며, 주변의 악인들로부터(2절) 모함을 받는 상황이다. 그는 그를 괴롭게 하는 대상을 ‘인생들’이라 표현한다. 이 ‘인생들’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베니 이쉬(인간의 아들들)’라는 단어이다. ‘이쉬’는 보통사람들보다 권력이나 영향력이 있는 인간을 뜻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시인보다 어느 정도 지위가 높거나 권세자들로부터 장시간에 걸쳐 고난을 겪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평안함을 주시기를 간구한다. 번민과 고통의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다. “내가 곤궁에 빠졌을 때에 주께서 나를 너그럽게 보아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1절).
혹시 지금 자신의 상황이 시인과 같이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으로 인해 고난을 겪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난 중에 기도와 확신
하나님의 얼굴이 비치기를 간구하라. 시인은 의롭고 경건하므로 자신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3절). 그리고 그는 자기 대적들에게 권면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알라.” 여기에서 ‘경건한 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약적인 사랑(헤세드)을 받는 자다. 이러한 사랑을 받는 자인 시인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들으심은 시인의 고난이 어떤 형태로든 해결되었거나 해결될 것을 의미한다.
이제 시인은 원수들에게 더는 범죄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4절). 그리고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가 누구뇨”라는 사람들의 회의적인 말에 하나님의 얼굴이 비치기를 간구하고 있다(6절). 즉, 시인은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5-26)는 아론의 축복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얼굴이 비치면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되어 있다.
시인은 자신의 변호 때문에 더는 걱정하지 않는다. 원수들의 권세나 재물에 대해서도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수들을 책망하면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7절).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주를 마음에 사모하는 기쁨이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더 낫다”라는 것이다.
나는 경건한 자인가? 나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는가? 주님이 내 마음에 주신 기쁨이 있는가?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지 지금 나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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