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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금) QT 선택의 기준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Mar 22, 2024
  • 3 min read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누가복음 6장 12~26절)


하나님의 선택 기준


선택 받는 자가 선택된 존재다. 성도가 선택받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 무리 속에서 특별히 열두 제자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그 택하신 제자들에게 ‘사도’라는 직책을 주셨다. ‘사도’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아포스톨로스’이다. 이 단어는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어 파송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포스텔로’의 명사형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과 승천 후에도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완성할 사역자들이 필요하셨다. 열두 사도는 이 막중한 임무를 위해 선택된 자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기 위해 선택받은 열두 제자의 이름을 살펴보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대부분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고, 심지어 마태는 유대인들이 극혐하는 세리였다. 그들은 지식인도 아니었고 유명하지도 않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주님은 자신의 사역을 이어받는 막중한 임무를 왜 이렇게 평범하고 볼품없는 자들에게 맡기려고 하셨을까?


예수님은 열두 사도 임명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산에 올라가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주님은 언제나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다(요 5:30).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힌 명단은 바로 하나님의 결정이었다. 작은 자를 들어 크게 사용하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소유와 인맥과 실력이 필요치 않으신 분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다. 우리가 스스로 높아질 근거가 없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하는 사람은 그 무엇보다 순전한 믿음과 순종의 자세를 가지면 된다. 


나는 하나님께 선택받을 만한 순전한 믿음과 순종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어떤 기준으로 동역자를 선택하는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는 선택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행복은 일시적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기다리는 행복은 영원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네 가지의 약속과 네 가지의 경고를 하신다. 그 내용은 상식을 파괴하고, 기존의 기준을 뒤집는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 미움받는 자들은 그 당시 종교적,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소외된 계층이다.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 불쌍하고 슬픈 자들이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복되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그들은 갈망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 약속하신다.


반면,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받는 자는 종교적, 사회적으로 기득권 계층을 말한다. 세상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자들이나 예수님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24절). 


여기서 ‘받았도다’로 번역된 ‘아페케테’는 이미 완전히 혹은 충분히 가진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상인이 돈을 전부 받았을 때 청산서에 썼던 말이다. 부자들은 이미 세상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을 모두 얻었다. 그러나 부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것뿐이다. 미래에 속해 다가오고 있는 보수, 그것을 받게 될 때 얻는 영원한 기쁨은 누릴 수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쉽지만, 눈앞에 보이는 일시적인 쾌락과 이익을 가져다주는 길을 택할 것인가? 현재에는 어려움도 많고 고난도 있지만, 영원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 길을 택할 것인가? 세상의 보상에 집착할 것인가,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쏟을 것인가?


나는 세상의 방법으로 행복해지는 것을 동경하고 있지 않은가?



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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