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금) QT_영적 성장을 이루려면?
- Chang Yong Park

- Mar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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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2.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3. 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록된 남자가 백오십 명이요 4.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 명이요 5. 스가냐 자손 중에서는 야하시엘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삼백 명이요 6. 아딘 자손 중에서는 요나단의 아들 에벳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오십 명이요 7. 엘람 자손 중에서는 아달리야의 아들 여사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요 8. 스바댜 자손 중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팔십 명이요 9. 요압 자손 중에서는 여히엘의 아들 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십팔 명이요 10. 슬로밋 자손 중에서는 요시뱌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육십 명이요 11. 베배 자손 중에서는 베배의 아들 스가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십팔 명이요 12. 아스갓 자손 중에서는 학가단의 아들 요하난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십 명이요 13.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의 이름은 엘리벨렛과 여우엘과 스마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육십 명이요 14. 비그왜 자손 중에서는 우대와 사붓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었느니라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16.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17.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20.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에스라 8장 1-20절)
영적 성장에는 희생과 결단이 필요
안정적 상황만 고려하면, 영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본문에 의하면 에스라와 귀환한 남자들의 수효는 대략 1,775명이었다. 그러므로 실제 귀환자들은 약 9천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1차 귀환 때인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귀환한 사람들의 수효와 비교할 때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수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제2차 포로귀환에서는 왜 이렇게 적은 수만 돌아오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면 자신들이 현재 누리는 안정적인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사실 아닥사스다 왕 시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페르시아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닥사스다 왕의 부친인 아하수에로 왕 때에 유대인 출신 왕후 에스더와 모르드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부와 영예를 누리는 자들이 많았고, 다른 유대인들도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안정적인 기반을 잡고 있던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도 큰 희생과 결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영적 성장에는 희생과 결단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결단하기를 소망한다. 영적 성장을 꿈꾸는 나는 어떠한 희생과 결단을 할 것인가? 나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고 권면한다면 나는 뭐라 답을 할 것인가?
영적 성장은 영적 이기심을 버릴 때 가능하다!
영적 이기심을 버릴 때,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있다. 본문에서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 귀환을 결정한 자들을 모두 모으고 삼 일간 유숙하면서 그들 가운데 부족함이 없는지 점검했다. 그런데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귀환을 결정한 자 중에서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전 포로귀환 때를 살펴보면 제사를 집전할 사람들은 차고도 넘치는데, 정작 제사를 위해 제물을 잡고, 집기를 준비하는 일을 담당해야 할 레위인들은 턱없이 부족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레위인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레위인들은 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던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그들이 성전에서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도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는데 있다. 사실 레위인들이 하는 일은 힘들고 고달팠던 반면, 그들에게 주어지는 보수는 보잘것없었다. 그리고 그나마 제대로 주어진 경우도 거의 없었다. 레위인들의 보수는 백성들의 십일조와 제물로 주어졌는데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대로 십일조를 하지 않았으므로 레위인들의 생계가 심히 어려웠다. 그에 반해 페르시아에서의 그들의 삶은 비교적 안락한 삶이었으며,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레위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 가운데 과연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요즘의 신앙공동체들과 절대 다르지 않다. 누구나 섬김 받기를 원하지 섬기기를 원하지 않는다. 조금만 일해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교회를 옮기거나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힘들고 부담되는 일들을 맡기 싫어 작은 교회보다 큰 교회를 선호하고, 얽매이거나 소속되는 것이 싫어 등록하지 않은 채 주일예배만 드리는 이들도 많다.
영적 성장은 영적 이기심을 버릴 때 가능하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고, 어떻게 다시 일어나 영적 성장을 이루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Photo by denys argyrio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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