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화) QT_후회가 아닌 회개를
- Chang Yong Park

- Mar 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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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마태복음 27장 1-10절)
살인 모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살인을 모의하다. 불법적인 작당 모의를 마친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은 새벽녘이 밝기를 기다렸다. 헬라어 ‘게노메네스’는 ‘기노마이’의 부정과거 분사형으로 ‘되었을 때’를 가리킨다. 따라서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합법적으로 회의를 열어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공의회를 통해 내린 결론을 가지고 예수를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법한 일들의 연속 선상이었다. 당시 산헤드린의 규정상 유죄를 당일에 판결할 수 없고, 적어도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유죄 판결뿐 아니라 사형을 집행하는 일들을 당일에 처리하는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인다.
빌라도는 로마의 디베료(Tiberius) 황제의 파견을 받아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제5대 총독이었다. 그는 약 10여 년의 시간 동안 유대와 예루살렘 지역을 통치하였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줄 때 ‘파레도칸’이라는 헬라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자기 권한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처분을 다른 사람의 권한 아래 넘겨주는 것을 의미한다.
산헤드린 공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판결을 내렸다 할지라도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권한이 있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보내어 사형을 집행해주기를 바라고 요구했다.
당신은 기득권을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불법적이고 불의한 모의에 참여한 적은 없었는가? 언제나 자신의 이익과 만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 어떻게 하면 희생과 헌신의 자리로 내려가 설 수 있는가?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유다
후회와 회개는 다르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나을 뻔했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낸 한 사람, 유다. 그는 자신이 은 삼십에 스승 예수를 팔아넘긴 일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 돈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예수는 무죄한 자요, 자신이 범죄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완고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바라보며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끊는다. 사복음서에는 유일하게 마태복음에만 유다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수난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이 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마태는 유다가 뉘우쳤다는 표현으로 헬라어 ‘메타멜레이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회개하다’라는 ‘메타노에인’이라는 동사와 구분이 되는 단어로 완전한 회개와 돌이킴보다는 단순한 인간적 ‘후회’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죽음으로 예수를 배반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유다가 던진 핏값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는데, 이는 예레미야 19장 1-13절과 스가랴 11장 13절의 말씀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성취로 볼 수도 있다.
예수의 수난과 죽으심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미 창세기 3장을 통하여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이와 동물의 무고한 죽음과 희생으로 죄와 수치를 가리는 가죽옷을 만드신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사의 예정된 하나의 과정이다. 이 세상 만물의 모든 역사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단 하나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오늘 회개가 아닌 후회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유다를 바라보며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이후 나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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