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수) QT_하나님의 능력, 인간의 무능력
- Chang Yong Park

- Apr 26, 2023
- 2 min read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요나 1장 11-17절)
하나님의 깊이
나의 한계를 깨달을 때가 하나님의 전능을 알 때다. 4절에서 언급된 ‘큰 폭풍’이 배와 사공들을 삼키기 위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이에 이방인들은 요나에게 어떻게 하면 거친 바다가 잠잠해질 수 있는지 묻는다. 인간의 노력을 다 했지만, 위기는 더 고조된 상황이었다. 당연한 결과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만물을 통치하시고 보존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경험한 이방인 사공들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그들은 처음에 큰 폭풍을 두려워했지만, 그것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더 크게 두려워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모든 열방’이 섬겨야만 하는 분이시다. 본문 16절에서 이방인 사공들은 더 나아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하는 모습이 나온다. 과거 다른 신들을 찾던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서 현재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요나에게서는 이방인들의 반응을 찾아볼 수 없다. 요나는 사공들이 묻는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신 때문에 큰 폭풍을 만났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에게 전혀 말하지 않는다. 이방인들은 큰 폭풍 사건의 과정을 겪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지만, 요나는 입으로만 말할 뿐 행동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 말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기희생이 아니다. 여전히 니느웨로 가서 선포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거부의 행동이다. 자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알지만 정작 삶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나 역시 점검해봐야 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고백하는데, 실제 삶으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고백과 삶이 일치하는가?
하나님의 준비
아무런 대안이 없을 때, 하나님은 이미 대책을 갖고 계시다. 전반적으로 요나의 모습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저 피하기만 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시스로 향하던 요나의 앞길에 하나님은 풍랑을 보내어 막았다. 이어서 요나는 큰 풍랑에 대한 책임감으로 자신을 들어서 바다에 던질 것을 말한다.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회개가 아닌 죽음을 택한다.
결국, 선원들은 이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바다는 잔잔해졌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익사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죽음으로 향하던 요나의 앞길에 큰 물고기가 막는다.
요나는 하나님에게 멀리 떨어지기 위해 몸부림쳤고, 자신의 신념을 하나님 앞에 굽히기보다 죽음을 택했던 불완전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이런 파국을 헤쳐나갈 해결책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먼저 준비해 놓으셨다. 요나를 삼키도록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고 요나는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다.
그가 갇힌 큰 물고기의 배 안은 어둡고 냄새나는, 두려움을 느끼기 충분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선지자는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찾는다. 다시스로 가는 배 안에서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빠졌던 그의 모습이 절망적이었다면, 반대로 절망적인 물고기 뱃속이지만 오히려 깨어나 기도하는 요나의 모습은 희망적이다.
나 자신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가?
나 자신은 어떤 진정성 있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Photo by Raimond Klavins on Unsplash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