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목) QT_애통을 넘어서는 은혜가 있다
- Chang Yong Park

- Apr 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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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21. 내가 저 깃발을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2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29. 기병과 활 쏘는 자의 함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읍 사람들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사는 사람이 없나니 30.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네가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31.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예레미야 4장 19-31절)
고통을 위로하는 애통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애통 속에서 위로를 발견한다. 본문은 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애통(19-22절)과 멸망당한 예루살렘의 폐허(23-31절)로 구성된다. 19절의 ‘아프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힐’은 ‘해산의 고통’을 표현하는 단어다. 유다의 참담한 운명이 그를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뜨리고 말았다(19절). 격렬한 전쟁터에서 울려 퍼지는 적들의 나팔소리는 선지자의 심장에 충격을 가하며 고통스럽게 한다. 구름처럼 쏟아져 광풍처럼 달려와 아군을 무너뜨리는 전쟁의 경보로 창자가 뒤틀리고 심장은 터질 듯하다.
유다의 패망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마음은 마치 자신의 집이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보다 더 애통하고 안타깝다(20절). 유다 백성의 죄악 된 길과 행위로 인해 당하는 심판이었다. 하지만 심판을 예언하고 심판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탄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의 공감과 연대를 보여준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동참하는 선지자의 애통은 파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매몰차게 하나님의 심판만 선포하는 차가운 선지자가 아니었다. 멸망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셨던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을 간직한 눈물의 선지자였다.
선지자의 애통은 하나님의 마음마저 감동하게 했다. 어리석고 지각없는 미련한 자식이라는 표현에는 꾸중보다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있다(22절). 끊임없는 용서와 사랑을 간직한 속마음을 몰라주는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이다.
자기 죄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지만, 함께 애통하며 위로해 주어야 할 이웃은 누구인가? 나는 그를 위해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그를 위해 진심 어린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끝장내지 않으시는 은혜
살려주시는 것이 은혜다. 살아 있으면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적들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예루살렘은 혼돈과 공허의 땅이 되고 말았다(23절).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살 힘을 주었던 소망의 빛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지켜주었던 산들이 흔들리고 있다. 안전이 사라지고 불안이 엄습해왔다. 풍성한 열매를 주던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고 말았다(26절).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거절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었다.
심판은 확정되었다. 먼 곳에서 달려온 기병과 활 쏘는 자들의 함성으로 성읍은 초토화되었고 백성들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29절). 이때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기회였다.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할 때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화려한 옷을 입고 금붙이로 치장하고 짙은 화장을 하고 창기처럼 적들의 마음을 돌이켜보려 했다(30절).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그들의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다는 해산하는 여인의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멸망에 이르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은 위기와 함께 은혜의 기회도 함께 주셨다는 사실이다. 27절의 ‘진멸’은 히브리어로 ‘웨칼라’다. ‘완전히 끝장내다’는 뜻이다. 다행히 진멸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여기서 한 줄기 희망을 본다. 심판은 돌이킬 수 없지만 끝장내지 않으시는 은혜로 하나님은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신다. 심판은 달게 받아야 한다. 심판 중에서도 끝장내지 않으시는 은혜를 의지하여 회개하면 반드시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엄청난 재앙과 재난 속에서 신음하는 형제들의 고통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끝장내지 않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전하고 품고 기도해야 할 이웃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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