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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금) QT_용서가 하나님의 마음이다!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Apr 8, 2022
  • 3 min read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예레미야 5장 1-9절)


의인 한 명이 없는 세상


한 사람이 중요하다. 그 한 사람이 많은 이를 구원할 수 있다. 본문은 의인 한 명을 찾을 수 없는 예루살렘의 모습(1-6절)과 용서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7-9절)으로 구성된다. 하나님이 매우 급하게 예루살렘 거리로 다니며 의인 한 사람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신다(1절). 그 한 사람을 이유로 온 유다 백성을 용서하시기 위함이다.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 때문에 온 나라와 백성이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예루살렘에는 의인 한 사람이 없었다. 백성들의 생각은 달랐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의로 맹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판단은 ‘No’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했지만 모두 거짓 맹세였기 때문이다(2절).


그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인정하고 행위로는 정의와 진리를 부정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셨지만 그들의 영혼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3절상). ‘아픔’의 히브리어 ‘훌’은 ‘괴로움’이란 뜻이다. 심판 강도는 더 커져갔지만 바위보다 더 두꺼운 얼굴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했다(3절하).


선지자는 자기 생각이 착오였음을 깨달았다. 차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선지자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길과 율법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징계와 교훈을 주기 위한 고난과 심판이라는 멍에와 결박조차 스스로 끊어버렸다. 고집 센 소처럼 제멋대로 날뛰며 죄악을 행했다(6절). 결국, 성난 사자와 이리와 표범 같은 강대국에 멸망하는 고통을 자초하고 말았다.


오늘도 주님은 이 세상을 향해 의인 한 명을 찾으신다. 나는 그 의인 한 명으로 서기 위해 철저히 말씀 앞에 서고 있는가? 의인 한 사람이라도 더 만들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고 있는가?


용서하지 못하시는 하나님


씨앗이 있어야 열매가 있다. 열매는 씨앗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의인 한 사람을 찾으라고 급히 명령하신 이유가 있다. 어떻게든 용서의 씨앗을 찾기 위해서였다. 의인 한 사람을 이유로 온 유다를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한 눈물겨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다. 의인 한 명을 찾지 못해 용서하실 수 없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인 한 사람이 없어 용서하지 못하시는 나쁜 신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인 그들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버렸다. ‘버리다’의 히브리어 ‘아자브’는 ‘배교’를 의미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에게 맹세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셨지만, 그 배부름으로 간음을 저질렀다(7절). 그들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보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풍요를 죄악을 저지르는 일에 남용했다.


유다 백성들은 갈 데까지 가보자는 악행으로 넘어서는 안 되는 자비의 한계선마저 넘고 말았다. 하나님은 용서의 한계선을 넘은 예루살렘과 유다의 죄악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9절). 마음에도 없는 거짓 회개를 반복하며 보란 듯 악을 행하는 유다 백성들을 용서하시는 것은 의로운 하나님의 성품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수없이 잘못을 저지르는 자녀의 습관적인 죄를 눈감아주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참으시며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고 끝까지 잘했다고 우기며 교만하고 죄를 짓는 유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가?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며 회개해야 할 진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진심으로 애통하며 돌이켜야 할 죄를 놓고 하나님 앞에 1:1로 대면하고 있는가?



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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