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화) QT_우상을 깨트리지 않으면, 내가 깨질 것이다
- Chang Yong Park

- May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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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2.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3.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 4.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 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6.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내가 이 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려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8. 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 9. 그들이 그들의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내가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10.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11.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 곳과 그 가운데 주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읍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13.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예레미야 19장 1-13절)
‘바크부크’의 ‘바코티’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절대적인 삶의 계획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에게 가서 옹기를 사라고 하신다. 이 옹기는 흙으로 초벌을 구운 뒤에 윤을 내기 위해 잿물로 입혀 구운 병 모양의 목이 좁은 ‘도기’(바크부크)이다. 이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운명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계획을 ‘좌절’(바코티)시킬 것이다. 발음이 비슷한 두 단어를 연결해 보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의 뜻을 좇지 않고 자기의 길을 걸어갈 때 맞이하게 되는 자명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이미 18장 1절에서 4절까지 토기장이를 통해 만들어진 토기의 운명이란 토기장이의 손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자식들을 바알에게 번제물로 불살라 바칠 정도로 자기의 욕망을 사랑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했다. 그들의 계획대로 그들은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킬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듣는 귀가 떨릴 정도로 재앙을 내릴 것이다. 예루살렘 주민들의 시체가 넘쳐 그들이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인신 제사를 자행했던 곳까지 시체를 묻을 정도로 심판할 것이다(11절). 자기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섬겼던 우상들을 깨트리지 않으면, 그들이 깨지게 될 것이다.
내가 깨트리지 못하는 우상은 무엇인가? 그 우상은 나를 어떻게 깨트리는가?
깨진 옹기가 되신 예수님
내가 깨지지 않아서 예수님이 깨지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의 행동을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다. 예레미야는 대동한 백성의 어른들과 원로 제사장들 앞에서 옹기를 깨트려 산산조각을 내는 예언적 행위를 통해 이 심판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선포한다. 시각과 청각적인 충격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우둔한 마음을 가진 자의 영혼을 깨우기 위한 선지자의 고뇌를 드러낸다.
또한, 선지자의 메시지가 강렬해질수록 우둔하여 듣지 못하는 백성들의 미련함이 심화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뿐 아니라 행위와 삶으로, 자신의 온몸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증거하셨다. 그분은 물과 피를 쏟아내며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선언하셨다. 메시지가 강렬해질수록 심판은 더욱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듣지 못하는 미련함과 우둔함이 더욱 커진다면 십자가는 가장 절정에 있는 메시지다.
십자가 앞에 깨진 예수의 몸은 우리의 우둔함을 재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준다. 심판이 임박했다고 느끼는 순간에 가장 좋은 선택은 돌이키는 것이다. 아니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십자가에 달려 깨어진 몸을 보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 음성이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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