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월) QT_믿음으로 가는 길 - 긍휼
- Chang Yong Park

- May 1, 2023
- 2 min read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나 4장 1-11절)
편협한 세계에 갇힌 요나
헨리 워드 비처은 이렇게 말했다. “긍휼은 정죄보다 더 많은 죄를 치료할 것이다.”
본문의 말씀은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로 시작한다. ‘성내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이하르’의 원형 ‘하라’는 표면이 몹시 뜨거워지는 현상을 나타내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곧 분노가 극심해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불타오는 상태를 나타낸다. 게다가 ‘매우 싫어하고’에 해당하는 ‘와이예라으 라아 게돌라’는 극심한 불쾌감이 요나의 마음속에 일어났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요나가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나는 불순종에 대한 대가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니느웨로 가서 여호와의 심판을 선포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이 철저히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시고 용서를 베푸시자 요나는 극심한 분노를 표출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극단적인 말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니느웨는 하나님께 심판 예고를 받을 정도로 악한 도시였다. 그리고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나가 원하는 것은 니느웨의 멸망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달랐다.
사실 요나는 하나님께서 긍휼이 많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2절).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의 심판을 선포하게 하셨지만, 그 백성들이 회개할 경우 그들에 대한 심판을 철회하실 것도 알고 있었다. 니느웨 백성들이 재앙을 받지 않고 용서를 받는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에 요나는 처음 사명대로 니느웨로 가지 않았고 다시스로 도망치려 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주관과 생각에 치우쳐 신앙생활을 한다. 요나가 그랬고,
유대인도 그러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태도가 부당하다는 것을 지적하신다(4절).
큰 그림을 그리시는 하나님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비를 받은 자로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조금의 이해도 없이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고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라며 그 성읍을 바라본다(5절).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그런 편협한 신앙을 고치시기를 원하셨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박넝쿨 덕에 그늘을 누리며 박넝쿨로 인해 기뻐했다(6절).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제거하시고 뜨거운 동풍으로 요나를 괴롭게 하셨다(7-8절). 그렇게 하루살이 박넝쿨을 아쉬워하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수많은 생명과 영혼을 그와 같이 아끼지 않겠냐고 질문하신다(9-11절).
요나가 박넝쿨이 사라지자 죽음을 구할 정도로 박넝쿨을 아꼈는데, 10절에 ‘아꼈거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쓰다’의 원형 ‘후쓰’는 무언가를 덮어 가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연약한 존재에 대해 측은히 여기거나 불쌍히 여기는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요나가 박넝쿨을 아낀 마음보다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더 크시다.
요나가 자신의 불량한 태도까지도 용납하시고 목숨을 살리신 하나님의 긍휼을 깨달았으면 어땠을까?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하심으로 용서를 받고 긍휼을 입은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나의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행동은 내게 없는가? 나는 얼마나 긍휼을 베풀며 사는가?
Photo by Tim Mossholder on Unsplash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