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금) QT_믿음의 사람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 Chang Yong Park

- May 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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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14-26절)
구원에 이르는 믿음
행함이 수반되지 않는 믿음은 속 빈 강정과 같다. 당시에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이 있었다. 헬라 철학에서 기인한 이원론 사상이다. 깨달음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은 기독교의 신앙과 대치된다. 기독교의 구원은 영적인 깨달음뿐만 아니라, 전인격적인 삶의 변화까지 일어난다. 믿음은 지적인 영역에 추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삶 속에서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믿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정도의 믿음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다. 이런 믿음으로 어찌 구원에 이를 수 있겠는가?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14절),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절). ‘죽은 것이라’로 번역된 ‘네크로스’는 사람이나 동물의 사체뿐 아니라, 생명력이 없는 거짓 가르침에도 적용되는 단어이다. 거짓 가르침은 구원에 이르지 못할 믿음으로 우리를 오염시킨다.
믿음과 행위는 나뉠 수 없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극단적인 교리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믿음과 행위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반드시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인위적인 믿음이 아닌, 신위적인 믿음이 우리 삶을 전인격적으로 변화시킨다. 그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한다.
행함으로 온전해지는 믿음
행함을 품은 믿음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을까?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임으로 아내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첩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던 아브라함이었다. 그런 연약한 믿음이 어떻게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 이삭까지 내어드릴 수 있는 성숙한 믿음으로 변했을까?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자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지기까지 변화의 과정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순종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자신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가 더욱 분명해졌다. 믿음도 자라는 과정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본 사람이 은혜의 맛도 알고, 성장의 맛도 안다. 막연함 속에 머물러 실체를 알 수 없는 믿음은 생명력이 없다. 행함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 믿음만이 변화도 성장도 가능하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21-22절). ‘온전하게 되었느니라’로 번역된 ‘에텔레이오데’의 원형은 ‘완성되다, 완전하게 되다, 이루다’라는 뜻이다. 또한, 수동태를 사용해서 행함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은 행함의 동기가 되고, 그 믿음을 머금은 행함이 믿음을 더욱더 단단하게 한다. 이렇게 믿음과 행함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나의 믿음이 드러나도록 오늘 당당하게 실천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
Photo by Luís Cardos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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