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금) QT_토기장이
- Chang Yong Park

- May 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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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7.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1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예레미야 18장 1-12절)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
주권 아래 놓여 있어야 마음도 놓인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향하게 하셨다. 그곳을 향하게 하신 목적은 다음과 같다. 당시 예레미야를 통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무시하고 핍박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려고 하시는 것이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14절)
토기장이의 손에서 빚어지던 그릇은 최초의 목적과 다르게 변형되었다. 그러나 토기장이는 그것으로 다른 목적의 그릇을 만들었다. 그것은 토기장이의 주권적 선택이었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주권자시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도, 그리고 우리 역시 우리의 삶에 주권을 하나님께 두지 않는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6절)
말씀과 같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손에 있는 존재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여 있으며, 우리의 생사화복 역시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징계는 피조물인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여 있는가?
두 종류의 그릇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때마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한 두 가지 결과를 말씀하신다.
첫 번째는 회개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돌이킨 자들의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심판을 계획하셨다. 그러나 예레미야를 통해 돌이킬 기회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붙잡고, 하나님께로 돌이킨 자들에게는 계획한 심판을 돌이키실 것을 말씀하신다. 토기장이가 목적대로 지은 바 되지 않은 그릇을 버리지 않고 돌이켜 다시 다른 용도로 만든 것과 같다.
두 번째는 회개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는 자들의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심판이 돌이킴 없이 그들에게 쏟아져 내리게 된다. 본문의 유다 백성들은 이미 이와 같은 상태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12절).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8절)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인간의 돌이킴이 있을 때 심판을 돌이키시는 분이다. ‘탕자의 비유’와 같이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방향을 돌이켰을 때, 탕자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녀의 권세를 되찾을 수 있었다. 만일 탕자가 돌이키지 않았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다시는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저주이다.
유다 백성들이 돌이키지 않아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우리도 돌이키라는 주님의 경고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계획된 징계는 돌이킬 수 없다.
나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 반응하며 돌이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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