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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월) QT_거룩함을 이루려는 몸부림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May 9, 2022
  • 3 min read

"1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지 여러 나라 가운데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14.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15. 무릇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여 16. 그들의 땅으로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리라 17.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18.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 19.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20.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21.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 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넘기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죽음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22. 주께서 군대로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뜨리려고 올무를 놓았음이니이다 23.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하니라"(예레미야 18장 13-23절)


거룩함을 포기할 때 치러야 할 대가


우상숭배는 유익도 있지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었고, 우상숭배에 빠졌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워하신다. 어느 곳에 가서 물어봐도 자녀가 자기 부모를 버리고, 다른 부모를 자신의 부모로 삼는 일은 없다. 남편의 사랑을 받는 처녀가 음란에 빠진 것처럼 가증한 일은 없다. 마치 레바논 산 정상의 만년설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 산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마를 수 없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께는 너무나 속상한 일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들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는다. 그러나 우상숭배를 하면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평안하다. 지금은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편리하고 유익하기에 그들이 선택한 길이 죄악의 길이고 심판의 길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길을 심판할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땅에서 그들의 삶은 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16절의 ‘두려움’(삼마)은 16절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곳에서 ‘놀람’으로 번역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 정도의 가혹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한순간에 비웃음거리가 되고 도움이 절실히 요청되겠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을 돌볼 사람이 없도록 처절하게 심판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가혹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순결함을 잃고 우상숭배에 빠져 살면서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혹한 사람들이다. 잘못도 모르고, 회개도 안 하는 우리가 더 하나님께 가혹한 일을 하는 것이다.


우상숭배에 빠진 사람들은 심판이 이르기 전까지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익숙한 방식이고, 또 편리하기까지 하니 그들은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심판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가를 치러야한다. 그러나 거룩함을 버린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


나는 거룩함을 버린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직시하고 있을까?


거룩함을 잃어버리는 이유


때로 입을 닫고 더 귀를 열 때 더욱 거룩해진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예레미야는 애국심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바벨론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예레미야가 아니어도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에 대해 말해 줄(그들이 필요한 말을 해 줄) 제사장과 지혜자와 선지자가 있었다.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예레미야의 말은 이제 필요가 없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쳐 내기 위해 담합한다. 그런데 그들의 무기가 끔찍하다. ‘혀’로 예레미야를 칠 생각이다. 그를 비난하고 헐뜯고 그에 대한 평판을 조작하면서 그가 하는 말은 귀를 닫고 철저히 무시하는 방식이다. 귀를 닫고 입을 열 때 사람은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밖으로 낸다(막7:15-16). 그러므로 경건은 입을 닫고, 귀를 열 때 이루게 된다(약 1:19).


나는 말하기를 속히 하고 있을까? 듣기를 속히 하고 있을까?


거룩함에 이르게 하는 중보자


나 자신의 거룩함을 위해 기도하는 분이 있다. 21-23절에 나오는 예레미야의 저주 기도는 듣기가 불편하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기로서니 원수의 생명이 끊어질 것과 그들의 자녀조차 불행하게 할 것을 기도하는 경건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기도는 예레미야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위협적이었는지 알게 해준다. 선지자는 고뇌한다. 주의 분노를 돌이키고 그들을 위하여 한 말이 저주로 돌아오는 상황 속에서 중보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리고 이 고뇌는 더 나은 중보자를 고대하게 한다(히 12:24). 자기들을 위해 하는 말인 줄도 모르고, 조롱을 퍼붓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분, 저들이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부르짖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눅 23:34)! 진정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거룩한 성도가 되도록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셨다는 사실을 오늘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몸부림일 뿐 아니라, 우리의 몸부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중보로 인해 소중한 삶을 얻은 것을 믿는가?



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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