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화) QT_두 마음
- Chang Yong Park

- May 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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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야고보서 4장 1-17절)
욕심과 정욕으로 사는 세상
세상 정욕은 혼란과 고통만 가져올 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싸움과 다툼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이것은 사람의 지체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정욕이 그 원인이다. 정욕으로 번역된 ‘헤도네’는 문자적으로 ‘기쁨’이란 의미이다. 하지만 야고보서에는 주로 ‘죄 된 정욕’, ‘쾌락’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야고보 사도는 수신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악의적 쾌락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세속적인 성도들이 개인의 쾌락과 육체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이웃에 대해서도 서슴지 않는 피해를 준다고 한다.
세상 정욕의 추구는 영적 간음과 같다. 야고보 사도는 세상 정욕에 빠진 자들에 대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라고 외친다(4절). 특히, 하나님과의 정조를 깨고 간음한 자들을 가리켜 세상과 벗 된 자들이라고 밝힌다. 비록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관계가 되었다 할지라도(롬5:1) 세상과 짝하게 되면 하나님과 적대 관계가 된다. 야고보 사도는 이처럼 세상과 벗 된 것 역시 간음죄로 규정하며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매우 강렬한 설의법을 사용하여 질타하고 있다.
성도의 신앙의 자세
성도는 겸손하고 회개하는 자세로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큰 은혜를 주시되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겸손히 순복해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을 따라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도망할 것이다. ‘대적하라’로 번역된 ‘안티스테테’는 ‘대항하다’, ‘거역하다’, ‘대적하여 서다’의 뜻으로 마귀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싸우라는 강력한 의미이다.
성도들이 끊임없는 마귀의 공격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항한다면 분명 마귀는 성도들을 피할 것이며 마침내 성도는 승리할 수 있다. 성도들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처럼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쾌락적인 정욕을 좇아가는 삶이 아니라 마귀를 대적하는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께서도 성도를 가까이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세상의 중간에 서 있는 ‘두 마음을 품은’ 성도들은 죄악 된 행동에서 떠나 죄에 대해 슬퍼하고 애통해야만 한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기를 낮추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을 높여주실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 비방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주 안에서 형제 된 성도들은 피차 비방해서는 안 된다.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자는 곧 하나님의 율법을 판단하는 자로서, 스스로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된다. 법을 세우시고 법을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이므로 인간은 누구도 재판자 위치에서 이웃을 판단할 수 없다.
나는 두 마음을 품으며 신앙생활을 하는가? 아니면 한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가? 만약 두 마음을 품으며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Photo by Luka Mal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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