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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월) QT 이제 예루살렘으로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Jun 10, 2024
  • 3 min read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2)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누가복음 19장 28~48절)


준비된 순종


사람은 세상일을 모두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실 나귀의 위치까지 아신다. 제자들에게 감람원 맞은편 마을로 가서 아무도 타지 않은 새끼나귀를 풀어오라고 하신다. 나귀 새끼는 스가랴의 예언의 성취(슥 9:9)이다. 이는 자신이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메시아이신 예수님 앞에 준비된 나귀 새끼는 아무도 쓰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무덤도 아무도 쓰지 않은 아리마대 요셉의 준비된, 아무도 쓰지 않은 무덤이다.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이 쓰시는 것은 정결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쓰실 것을 친히 준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일꾼으로 준비하셨다. 주가 쓰시겠다고 우리를 부르실 때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감람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본 자들이 찬양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38절). 누가는 막11:9의 ‘호산나’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를 빼고 ‘왕’(헬;바실류스)을 삽입하여 표현한다. 예수님을 찬양하는 이들은 예수님이 의도하시는 왕과는 다르게 여전히 정치적인 왕으로 이해하고 있다. 자신들의 요구에 일치하는 왕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고백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심이 선포된다.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자들은 오해할지라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찬양한다. 그러나 맹인과 같은 바리새인들은 영적 눈이 어두워 메시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찬양을 방해한다. 현재의 교회 안에도 예배하며 경배하는 이들을 향하여 개인의 기준을 가지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나 자신은 왕이신 예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는가? 혹, 나의 잣대로 공동체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전 정화


청소보다 중요한 것은 청결 유지다. 성전에 가까이 오시며 예수님이 우신다(41절). ‘우시며’를 가리키는 ‘에클라우센(헬)’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내어 통곡하는 것을 표현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아신다. 사람들의 찬양 소리가 얼마 후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심판을 받게 된다. 사랑이신 예수님의 통곡은 우리를 향한 애통의 통곡이다. 


성전에 부패의 냄새가 난다. 백성들은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해 멀리서 제물을 끌고 여러 날이 걸려 예루살렘으로 온다. 그러다 보니 정결했던 제물에 흠이 생긴다. 성전 안의 장사꾼들은 흠 없는 제물을 이방인의 뜰에서 매매하여 폭리를 취한다. 순례객들에게 성전세를 내도록 환전하게 하고 이익을 취한다. 의도가 어떠하였든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한 유대인 지도자들의 부정한 사업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을 모두 내쫓으신다.


성도는 성전이다. 예수님은 성전을 내 집이라고 하신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사 56:7 참조). 성도에게 기도가 없다면 강도의 소굴을 만들게 된다. 예수님은 오늘도 친히 우리의 마음을 청소하여 주신다. 성전 정화를 마친 예수님은 그곳에서 말씀을 가르치신다. 헛된 것들로 가득했던 자리에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채워주신다. 성도는 죄의 악한 것들이 자신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기도하며 말씀으로 충만해야 한다. 


나 자신은 예수님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를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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