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화) QT 반전을 일으키는 분
- Chang Yong Park

- Jun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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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0장 1~18절)
순종하게 하는 권위
하이데거는 ‘본질?’ 혹 ‘실존?’ 둘 중 무엇이 중요한지 물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본질이 더 중요하다. 직분을 가진 자의 실존은 본질이 가진 권위를 이길 수 없다.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 밖으로 장사꾼들을 내쫓으신 예수님은 성전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셨다.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셨다. 당시 성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감독할 권한은 산헤드린이 가지고 있었다. 산헤드린이 파송한 공인된 직책을 가진 사람만이 성전을 관리하고 예배를 주관하며 율법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산헤드린의 공인된 직책이 없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절). 권위에 해당하는 ‘엑수시아’는 ‘권능’, ‘권한’, ‘힘’이란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 ‘권위’를 말하기도 하고, 세속적 의미에서의 ‘권한’과 ‘통치권’을 말하기도 한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산헤드린의 권위를 가지고 질문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더 높은 신적 권위로 자신의 질문에 답할 것을 명령하신다(3절).
예수님의 신적 권위는 세례요한의 세례 시에 나타났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비둘기와 하늘의 소리가 내려오면서 왕의 신분과 권위가 예수님에게 공적으로 수여되었다. 진정한 권위를 가지고 오신 예수님은 기존의 권위구조를 무너뜨리셨다.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을 질책하셨다.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에 성전의 지도자들은 대항했다. 종교 지도자들로서 누리던 기득권과 권위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욕심으로 가득 찬 눈은 성전의 진정한 권위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나는 내 권위를 잃을까 두려워 타인의 권위를 무시한 적이 있는가? 나는 예수님을 내 삶의 진정한 권위자로 인정하고 그 권위 아래 살고 있는가?
위대한 반전
열매 없는 나무는 나중 땔감이 될 뿐이다. 한 포도원 주인이 잘 만들어진 자신의 포도원을 소작인들에게 세를 주고 먼 타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적당한 추수 때에 포도원 소출의 일부를 받기 위해 자신의 종들을 보냈다. 소출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칼포스’로서, ‘열매’ 또는 ‘성과’, ‘결과’라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행위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열매를 보내기는커녕 종들을 때리고 능욕하고 내쫓았다.
결국, 주인은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 소작인들이 회심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포도원을 차지하기로 마음먹은 소작인들은 아들까지 내쫓아서 죽였다. 이제 포도원은 완전히 소작인들의 소유가 된 듯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반전이 일어난다. 아들까지 잃은 포도원 주인은 직접 와서 소작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다.
소작인들로 비유된 유대인들은 결국 그 특권적 위치를 잃어버리고 멸망하게 된다. 그리고 구속사에 있어 혈통적 이스라엘 대신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영적 이스라엘이 그 지위와 신분을 대신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하나님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이방인들에게로 그 상속권이 넘어간다.
예수님은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비유가 주는 교훈에 쐐기를 박으신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유대교에 필요 없는 재료로 여긴다. 하지만 예수님은 교회의 기초가 되셔서 그 위에 모든 민족이 함께 지어져 가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머릿돌이 되신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나 열매 맺는 삶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리만 주장한다면 눈이 멀어 종국에는 하나님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 대신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성실하게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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