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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수) QT 국민의 의무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Jun 12, 2024
  • 3 min read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39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누가복음 20장 19~40절)


반드시 지켜야 할 것


권리는 포기할 권리가 있지만, 의무는 포기할 의무가 없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치명적인 갈등이 고조된 상태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번에는 납세의 문제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한다.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로마제국은 인구별로 세금을 내게 하는 인두세를 부여했다. 세금은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으로 냈는데, 동전에 로마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자 했던 유대인들은 납세를 우상숭배라고 여겨 거부했다. 반면, 로마제국은 납세 거부를 로마 정부에 반항하는 것으로 여겨 엄격하게 처벌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옳다’고 대답하면 예수님은 종교적인 변절자가 된다. ‘옳지 않다’고 대답하면 정치적 역도가 되어 로마의 처벌을 받게 된다.


예수님이 데나리온을 요구하자 정탐들은 곧장 가져온다. 이는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새겨진 데나리온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했음을 짐작케 한다. 정탐들이 데나리온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가이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 ‘바치다’로 번역된 헬라어 ‘아포도테’는 ‘갚다’, ‘되돌려주다’라는 뜻을 가진 ‘아포디도미’의 명령형이다. 예수님은 납세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당연한 의무로 가르치신다. 그러나 예수님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그 뒤에 나온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것은 단순히 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실패했다.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도 실패했다. 하나님의 것을 드려야 할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있는가?


부활이 없는 삶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면, 영적으로 눈이 먼다. 성도가 보이는 삶만 추구하면, 이 땅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 지도자들의 의지는 집요했다.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부활과 관련된 문제를 가지고 도전해 왔다. 모세의 법에 따른 계대 결혼을 말하면서 부활의 당위성을 부정했다.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종교적, 정치적 힘을 갖춘 종교 귀족들이었다. 모세오경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고 부활과 영적 세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기대하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한다. 첫째, 부활의 삶은 현재의 삶과 똑같지 않다. 죽음이 사라지기에 혈통을 잇는 결혼이 무의미해진다. 또한, 제한된 존재의 상태에서 벗어나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된다. 


둘째, 출애굽기가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표현하면서 부활을 입증하고 있다. 모세가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은 지 오랜 후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족장들과의 관계를 말씀하실 때 현재형으로 말씀하신다. 1인칭 be동사인 ‘에이미’란 현재 동사를 사용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나타내신다. 족장들은 부활하여 현재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 살아있는 자들이다.


부활은 땅의 것을 버리고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성결한 생각과 생활을 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골3:1-2). 사두개인들은 이런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다. 왜냐하면, 땅의 것들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부활을 위해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부활이 없다고 우기는 것이 사두개인들에게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부활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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