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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수) QT_연결과 분리를 잘해야 한다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Jun 16, 2021
  • 2 min read

"36.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 37.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38.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39.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40. 다윗의 전령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하니 41. 아비가일이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이르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42.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그를 뒤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43.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더니 그들 두 사람이 그의 아내가 되니라 44. 사울이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사무엘상 25장 36-44절)


마음과 몸의 연결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있다. 36절에 아비가일이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기의 남편이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그 집에 배설하고 대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침이 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


37절에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즉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일을 그에게 말했다. 이에 그는 매우 두려워하며 발작을 일으켰다. 이것이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의 말씀이 뜻하는 바다.


낙담은 몸이 하지 않는다. 마음이 한다. 마음이 낙담 되었더니 몸이 반응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나발의 근심이 나발을 죽게 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나발은 자신의 소유를 다 지켰던 자였는데,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음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보이지 않는 말과 마음이, 보이는 육체를 죽이고 살린다. 사역에서 보이는 부분만 보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삯꾼만 나쁜 게 아니다. 꿈이 없는 사역자도 악하다. 돌과 같이 굳은 사역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말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항상 마음을 즐겁게, 말을 긍정적으로 하여 부드럽지만 강력한 생명의 근원을 누리는 사명자가 되라!


능력과 권리 구별


능력과 권리를 구별하라. 39절에 다윗은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의 모욕당함을 나발에게 복수하였고, 다윗 스스로 복수하지 않게끔 막아주셨음을 찬양했다.


옛날 성경에는 신설(伸雪)하사(아쉘 라브)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리고 창피스러운 일을 씻어 버렸다는 뜻이다. “나발에 당한 나의 욕을(나에게 가해진 불명예)를 신설하사”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오래 참음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이다. 참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냥 무작정 이를 갈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면서 참는 ‘두고 보자’형이 있고, ‘하나님이 복수해주시겠지’라면서 기다리는 형이 있다. ‘하나님이 복수하시리라’ 이것을 성경은 ‘온유’라고 한다. 온유는 겉모습의 단어가 아니다. 앞에서는 젠틀하고 뒤에서는 칼을 가는 것을 온유라 하지 않는다. 진정한 온유란, ‘하나님이 복수하시겠지’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야’라고 여기는 것이다.


사역을 하다 보면 참기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하시겠지”. 사실 이보다 더 무서운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대부분 스스로가 복수를 계획한다.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이렇듯 멈추는 것을 잘했다. 성격이 둔해서 참은 게 아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오래 참고 멈출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성전건축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다윗이지만, 그러한 능력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어”라고 하며 멈췄다. 격투기 선수는 사람을 죽일 능력은 있어도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다. 다윗은 능력과 권리를 구분할 줄 알았다. 운전을 너무 잘해서, 속도를 올릴 능력은 있어도, 아무 데서나 속도를 높일 권리는 없다. 사역하면 할수록 능력은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권리를 주시는 분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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