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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수) QT 한 가지 소원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Jun 5, 2024
  • 2 min read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누가복음 18장 31~43)


수난 예고


감추려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 게 있다. 31절부터 34절까지는 세 번째 수난 예고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고난과 돌아가심을 말씀하신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기록한 내용을 이루려 하심을 강조하신다(31절). 


33절에 ‘저는 살아나리라’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나스테세타이’이다. 이 단어는 ‘예수께서 능동적으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 부활의 권능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살리신 이유가 있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행2:24; 히4:15).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죄 가운데서 해방하기 위함이다(고전 15:17).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대속 제물로 죽임당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을 하셨다. 그 원동력은 하나님을 신뢰함에서 오는 인내였다. 


‘감취었으므로’로 번역된 헬라어는 ‘엔…케크륌메논’이다. 이 단어는 제자들이 수난 예고의 말씀을 이해한 적이 없음을 보여 준다(34절). 그러나 머지않아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인해 그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 


당시 제자들도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체험한 후에 메시아에게 왜 고난이 있게 되었는지 깨달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시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체험적인 요소가 믿음의 성장에 영향이 있음을 보여 준다. 


나 자신은 죄에서 해방되었는가? 주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체험하였는가?


인생 역전


반대에 부딪혀도 포기하지 않으면, 반대할 수 없는 반대 상황이 펼쳐진다. 맹인의 외침이 있었다. 무리가 맹인에게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고 있다고 알려주었다(37절). ‘나사렛’이란 호칭에는 촌사람이라는 비아냥거림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맹인은 예수에 대하여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다(38절). 


맹인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인정함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한다. 무리는 육신의 눈은 뜨고 있었으나 영적 눈은 감겨 있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적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다. 


맹인 바디매오는 사람들의 빗발치는 반대와 책망에 부딪힌다. 그런데도 예수를 향한 간절한 외침을 포기하지 않는다(39절). 이러한 힘은 예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까이 오매(40절)’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프로스아우톤’이다. 이 단어는 ‘예수 자신에게로 가까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맹인에게 귀 기울여주시는 분이시다. 


이렇듯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와 거리를 두지 않으신다. 먼저 찾아가시는 분이시다.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신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으신다(41절). 바디매오는 “주여, 눈을 떠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구체적으로 고백한다(마20:33; 막10:51). 바디매오가 평생에 눈뜨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예수께서 명하자 맹인은 곧바로 눈을 뜨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에 치유의 능력이 있음을 알게 한다. 바디매오는 눈이 떠져 보자마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다(43절). 


나 자신을 낙심되게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 간절히 원하는 소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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