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8월 16일(월) QT_어떠한 그릇인가?

  • Writer: Chang Yong Park
    Chang Yong Park
  • Aug 15, 2022
  • 3 min read

"36.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며 나의 마음이 길헤레스 사람들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나니 이는 그가 모은 재물이 없어졌음이라 37. 모든 사람이 대머리가 되었고 모든 사람이 수염을 밀었으며 손에 칼자국이 있고 허리에 굵은 베가 둘렸고 38. 모압의 모든 지붕과 거리 각처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니 내가 모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같이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어찌하여 모압이 파괴되었으며 어찌하여 그들이 애곡하는가 모압이 부끄러워서 등을 돌렸도다 그런즉 모압이 그 사방 모든 사람의 조롱 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되리로다 40.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모압 위에 그의 날개를 펴리라 41.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 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 4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닥치나니 44.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이 벌 받을 해가 임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5. 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에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나며 불길이 시혼 가운데 나서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 46. 모압이여 네게 화가 있도다 그모스의 백성이 망하였도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 47. 그러나 내가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의 심판이 여기까지니라"(예레미야 48장 36-47절)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은 깨뜨려진다. 왜 깨뜨려지는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마치 내가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모압의 모습이 그랬다. 자기 자신을 믿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믿었던 결과로 그들은 깨뜨려진다. 교만의 결과는 조롱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43절에 모압에 대한 심판이 인간의 말이 아니라 신적 계시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에 동사 ‘아마르’ 대신 명사 ‘네움’을 사용하였다. ‘네움’은 단지 말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계시하실 때 사용되는 동사 ‘나암’의 명사형이다. 즉, 이 모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마르’ 대신 ‘네움’을 사용한 것이다.


47절은 미래 예언의 문맥임에도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완료형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는 표현까지 덧붙이고 있다. 명사 네움과 완료형 동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명확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의 원뜻은 ‘재미없는 그릇’이다. 부모가 자녀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신다. 하지만 교만한 사람들을 보실 때는 그런 흐뭇함을 기대할 수 없다. 토기장이가 잘못 만들어진 그릇을 깨뜨려버리는 것처럼, 토기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재미없는 그릇을 깨뜨리신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2장 20절과 21절에 “큰 집에는 여러 그릇이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라고 한다. 귀하게 쓰임을 받으려면 자기를 깨끗이 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선한 일을 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하나님 보시기에 재미없는 그릇은 천하게 쓰일 수밖에 없다.


여전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긍휼이시다.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한 모압이었지만, 마지막에는 회복의 말씀을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심판을 선포하시고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에 빠지게 하시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긍휼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얻도록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두 번째 책에서 심판이 미루어지는 이유에 대해 말씀한다.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여기저기 깨지고 함정에 빠진 듯, 올무에 걸린 듯 보이는 우리의 삶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그릇이 더 깨끗해지고 주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선한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준비된 그릇은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자신을 깨끗이 하는 그릇이다.


나는 어떠한 그릇으로 쓰임 받기를 원하는가? 쓰임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 보시기에 재미있는 그릇인가?


Photo by Daniel Tafjord on Unsplash.



ree

 
 
 

Comments


Join our mailing list

Never miss an update

  • c-facebook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