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목) QT_심판이 온다면
- Chang Yong Park

- Aug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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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24.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았도다 25.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26.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 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27.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 28.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29.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 3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세웠음이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32. 그들의 낙타들은 노략물이 되겠고 그들의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살쩍을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여러 곳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거기 사는 사람이나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리라 하시니라 34. 유다 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5.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 36.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가 가지 않는 나라가 없으리라 3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엘람으로 그의 원수의 앞,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의 앞에서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들 위에 내릴 것이며 내가 또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들을 멸망시키리라 38. 내가 나의 보좌를 엘람에 주고 왕과 고관들을 그 곳에서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그러나 말일에 이르러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49장 23-39절)
이유를 찾아라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이 심판하지 않으신다. 다른 나라들의 심판과는 다르게 본문의 다메섹, 게달과 하솔, 엘람의 심판에는 명확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앞선 나라들이 그랬듯 하나님께서는 이유없이 나라를 심판하지 않으신다. 정말 이유가 없었을까?
예레미야는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어찌 버린 것이 되지 않겠느냐”(25절)라고 조롱하듯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셨던 성읍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메섹은 교통의 요충지였고, 비옥한 환경으로 모든 사람의 칭송을 받는 장소였다.
그저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족을 주었다는 것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다메섹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풍요로움을 찬양하며 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메섹을 심판하신 이유이다. 게달과 하솔, 엘람의 심판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너는 일어나 저 평안하고 염려 없이 거하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 없이 홀로 거하는 국민을 치라”(31절). 본 절의 ‘평안하고’의 원어는 ‘쉘레우’로 ‘번성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곧, 번성하고 평안하여 문빗장이 없어도 살 수 있는 곳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게달과 하솔 역시 번성한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엘람을 심판하신 이유는 35절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35절). 엘람은 활을 바탕으로 강한 군사력을 가진 곳이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군사력을 신앙하였다. 이처럼 이들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것들을 신앙하던 국가들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신 이유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평안한 일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될 때, 그 평안은 심판의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의 강함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이유가 될 때, 그것 역시 심판의 이유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 징계가 올 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을 분별력이 있는가?
회복의 소망
소망은 그 힘겨운 고난도 견디게 한다. 엘람을 향한 심판의 말씀 이후, 예레미야는 엘람의 포로들이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39절). 이 말씀을 듣게 된 엘람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들을 심판하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소망으로 고난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심판의 주체였던 하나님을 소망의 주체로 붙잡게 될 때, 우리는 고난을 이길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하나님을 심판의 주체로 대면해선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어제를 돌이켜 오늘을 회복할 소망을 주신다. 그 소망을 품고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의 하나님을 소망할 때, 우리는 징계의 삶이 아닌 소망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며 승리하고 있는가?
Photo by anthony intraversat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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