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화) QT 죄를 깨닫는 능력
- Chang Yong Park

- Aug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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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출애굽기 15장 22~27절)
역설적 기독교
약할 때 진정 영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일반적인 법칙과 다르다. 특히 사도 바울은 역설적(逆說的)인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 1:27),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로다(고후 6:10)’ 등이 그것이다. 스스로 약함을 인정할 때 강할 수 있다는 표현도 이와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의 기적을 경험했다. 그들은 모세와 미리암의 찬양에 맞춰 춤추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온 후 먹을 물이 없어 불만과 원망이 터져 나왔다. 찬양이 원망으로 바뀌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일이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3일 만에 찬양에서 원망의 대상이 되셨다.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이스라엘의 이중성에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물이 없어 사막을 여행한다는 건 무모한 일이다. 게다가 성인 남성만 60만명, 가족까지 200만 명의 규모와 가축까지 먹을 물이 없으면, 이건 재난이다. 성경은 모세와 미리암의 찬양 이후 마라의 사건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이스라엘의 연약한 믿음을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적 이후 나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강하다. 그래서 성도는 약할 때 강하다.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하나님이 나를 강하게 만드신 기억이 있는가?
여호와 라파
상처를 치료해야 새살이 돋는다. 이스라엘은 홍해 기적 3일 만에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냈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이었다. 바른 신앙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는 것이다(마 16:24). 자기 부인은 하나님 중심으로의 시각 전환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수고를 감수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쫓는 건 하나님 나라를 향한 변함없는 의지를 의미한다. 전인격적인 삶의 전환을 통해 ‘시냇가의 심은 나무로 열매를 맺고 모든 일의 형통한 축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시 1:3).
원망의 소리를 듣고서, 모세는 나무 막대기를 고통(히-마라)의 샘에 던졌다. 그랬더니 단 물이 되었다. 학자들은 나무 막대기를 ‘십자가’라 풀이한다. 원망 가득한 인생이 십자가를 만나면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
십자가는 죄와 심판을 의미한다. 구약에서의 십자가는 율법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법도와 율례’를 정하신다(25절). 의와 죄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법도와 율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닫는다. 신앙은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먼저 들어야 한다. 들음이 없는 신앙은 우상숭배이다. 말씀을 들으며 지금껏 애굽을 뜻하는 세상의 가치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살았던 나를 발견한다(롬 10:17). 이것이 바뀌지 않으면 신앙은 쓰디쓴 마라와 같다.
자기중심적 신앙은 나를 아프게 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가한다.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26절)이라 말씀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큰 나무숲(히_엘림)으로 인도하신다. 그 곳에는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과 12제자, 70인의 문도가 있다. 엘림은 곧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이다.
내가 원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사명을 쫓고 있는가? 큰 도전이 되었던 주님의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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