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화) QT_모든 상황 속에서
- Chang Yong Park

- Aug 22, 2023
- 3 min read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세기 33장 1-20절)
마주하기 어려운 만남
진정한 화해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가능하다. 에서는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곱에게 향했다. 분명 400명의 군대의 행진은 화해를 위한 목적이 아닌 전쟁을 준비하는 숫자였다. 에서와 야곱은 원수가 되었다. 20년만에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에서와 야곱의 사생결단의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그 순간 예상을 뒤엎고 에서는 야곱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먼저 화해의 행동을 취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에서의 마음을 돌이키게 했을까?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전 얍복 강가에서 환도뼈를 다쳤다. 인간적으로 무기력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기에 더욱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필요했다.
저 멀리서 동생이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것을 본 형의 마음은 어땠을까? 에서는 야곱이 밝고 씩씩하며 찬란한 모습으로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동생 야곱의 모습에선 남의 집에서 종살이했던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다리를 보니 절뚝이는 장애가 있었다. 나약한 한 사람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야곱은 형과의 화해를 위해 값비싼 선물처럼,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화해하려고 했다. 자신에게 잘못하고 도망갔던 야곱에게 에서는 충분히 화를 낼 만했다. 하지만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동생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그는 따뜻하게 안아 주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야곱다움? 나다움!
진정한 나다움은 순간마다 하나님을 추구할 때 가능하다. 나다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야곱 또한 야곱다움이 남아있다. 그는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 에서를 만날 때 더 사랑하는 자녀들이 다칠 것을 염려해 맨 뒤에 서게 했다(2절), 그리고는 에서의 종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7번 몸을 굽혀 화해를 요청했다.
또, 에서의 얼굴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과 같다고 고백하였다. 야곱의 이런 태도는 진정한 화해의 행동이라기보다는 하나님만 의지하기가 불안하여 동시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던 야곱의 전형적인 ‘야곱다움’이었다(5-8절).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 야곱은 브니엘(‘내가 하나님을 보았다.’)에 있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신 것은 그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야곱은 에서를 만나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는 미사여구로 고백한 것이다.
결과는 어떠한가? 에서는 야곱의 값비싼 선물과 고백 때문에 용서한 것이 아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만져주셨다.
에서는 진심으로 야곱 가족이 함께 세일로 가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야곱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에서와 약속한 세일로 가지 않고 숙곳에 가서 집을 지었다(12-14절). 여전히 야곱은 ‘야곱다움’이었다. 지금도 하나님은 야곱다운 우리에게 약속의 땅에 머물며 함께 교제하기를 청하시지만 우리는 약속의 땅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야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평안히 돌아올 수 있게 약속하셨다. 하지만 야곱은 끝내 정착할 땅이 아니라 떠날 땅임에도 세겜에 장막을 치고 정착하였다(19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래 약속하신 대로 인도하시고 함께 교제하기를 원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저울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약속을 깨닫지 못하고 나의 힘, 자기중심적인 나다움을 의지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 나의 일상 속에서 자기중심적 ‘나다움’을 버리고 어떻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을까?
Photo by md duran on Unsplash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