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목) QT_후새의 모략과 아히도벨의 죽음
- Chang Yong Park

- Aug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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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으니 16.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전하기를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17. 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여종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알리더니 18. 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19.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알지 못하더라 20.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하니 여인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그들이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21. 그들이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가서 다윗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22.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23.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사무엘하 17장 15-23절)
후새의 모략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실한 친구이다.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 왕이 압살롬의 정세를 캐내도록 예루살렘에 남겨 둔 자들이었다(15:24-29절). 후새는 다윗 왕을 위하여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아히도벨의 계략과 자신이 압살롬에게 말했던 계략 모두를 이야기해 주었다(15절). 그리고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 오늘 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말고 요단강을 건너야 할 것을 말해야 한다고 권면했다(16절).
왜냐하면, 후새는 압살롬이 자신의 전략을 좋게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다윗을 급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후새의 메시지는 요나단과 아히마아스 그리고 어떤 여종을 통해 다윗 왕에게 전달되었다(17절). 이렇게 다윗 왕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를 돕는 진실한 자들이 있었다. 진실한 친구는 어려울 때 돕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떠나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곤경에 처한 자들을 더욱더 어렵게 하는 자들이 있다. 다윗을 급습해서 죽이고자 했었던 아히도벨,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 한 청년(18절)이 그런 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떠난 자들의 지혜와 전략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무력하게 됨을 보여준다. 아히도벨의 계략은 후새에 의해서, 그리고 압살롬에게 알린 한 청년의 보고는 바후림 지역의 어느 무명의 여인에 의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18-21절). 결국 후새의 메시지는 다윗 왕에게 전달되어, 다윗 왕 무리는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다.
다윗 왕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후새와 바후림 지역에 거주하는 어느 무명 여인의 생명을 건 헌신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곤경에 처해있을 때, 우리를 위하여 대신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성경은 가르친다(요일3:16절). 나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형제들을 위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아히도벨의 죽음
하나님의 의를 떠난 자의 최후는 불행한 죽음이다. 다윗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압살롬이 다윗을 급습할 기회를 놓쳤으며, 다윗에게 재정비할 시간적인 여유를 주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히도벨은 자신의 계략이 실패했고,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내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않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집을 정리한 후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23절).
아히도벨의 죽음은 마치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인다. 아히도벨은 다윗과 매우 가까운 사람이었으나, 개인적인 원한에 사로잡혀 그를 배신하였다. 그는 다윗의 철저한 회개와 눈물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복수심에 불타 하나님의 의를 떠나버렸다. 가룟 유다도 자기 생각과 다른 예수님의 모습에 실망하여 주님을 배신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떠난 자의 최후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비참한 죽음을 반면교사 삼아 하나님의 의를 위한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충성된 자로 인정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고전 4:1-2). 충성된 일꾼의 마지막은 예수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3)라고 말씀해 주실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다를 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충성된 일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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