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월) QT_압살롬의 죽음
- Chang Yong Park

- Aug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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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10.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하니 11. 요압이 그 알린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하는지라 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13.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였더라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하니 14.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15.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17.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사무엘하 18장 9-18절)
압살롬의 교만과 패배
압살롬은 나무에 매달려 죽게 됨으로써 그의 교만함이 부끄러움을 당한다. 성경은 압살롬의 교만과 범죄를 그의 머리숱을 들어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그의 머리는 머리숱이 많아 무거웠다(삼하14:26절). 전쟁에서 패한 압살롬을 머리숱이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 매달린 모습으로 설명한다(삼하18:9절). 그 이유는 하나님이 단순히 원수를 이기시는 분으로만 설명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그의 교만한 마음을 보고 계신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 16:18). 결국 압살롬의 반역은 교만한 마음으로 인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교만은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영적 교만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왕에 대한 반역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 교만을 나무에 매달리게 하셨고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셨다. 나무에 매달린 압살롬은 자신이 하나님의 손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요압의 불순종과 교만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그의 교만함을 드러낸다. 다윗은 압살롬에 대해 생포하여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12절에서 한 군인이 다윗의 명령을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압살롬을 해하지 말고(Protect)”는 안전하게 보호하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명령을 요압과 아비새, 잇새 등 다른 군인들도 함께 들었다.
그래서 한 군인이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매달린 것을 보고 죽이지 않고, 요압에 찾아와 보고를 한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압살롬을 죽인다. 이 과정에서 요압이 군인에게 돈을 주면서 죽이라고 하지만 군인은 더 많은 돈을 주더라도 다윗의 명령에 불순종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군인은 더 나아가 자신이 압살롬을 죽였다면 요압이 자기를 죽였을 것이라면서, 요압에게 지혜롭게 이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13절).
이처럼 성경은 다윗의 명령에 순종하는 군인과 불순종하는 요압을 대비시키고 있다.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면 순종은 의인이 되게 한다(롬5:19절). 요압은 이 불순종으로 압살롬의 반역에 이어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압살롬의 죽음과 교만의 상징
압살롬의 교만은 그의 기념비와 그의 죽음이 대비되며 끝을 맞이한다. 압살롬은 생전에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 그 이유는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에 기념비를 남김으로 자신의 이름이 대대로 기억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압살롬의 아들이 없었다는 것은 실제로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다(삼하14:27절). 그 아들들이 일찍 죽었거나 아니면 대를 이을 상황이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압살롬이 자녀나 기념비를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 직후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를 풀숲에 있던 구덩이에 버리고 돌로 덮은 뒤에 도망을 간다. 이것은 압살롬이 추구한 꿈과 미래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비록 기념비는 남았으나 그의 이름은 반역자로 기억되었으며 하나님 앞에 교만했던 인생으로 남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의지하는 교만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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